"美, 두 개의 전장 감당 못 한다" 중동 쏠린 눈에 웃는 푸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서방이 러시아의 동태 파악에 나섰다. 당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 밝힌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9일(현지시간) 포린폴리시(FP) 등은 서방 정보 당국이 하마스 기습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과의 결속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까진 러시아가 이번 사태에 물질적인 지원을 하거나 이란-하마스 커넥션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진 않았다는 게 서방 정보 당국자들의 평가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수천 대의 이란제 자살 드론을 공수하는 등 이란과 군사협력을 강화해온 만큼 사태가 악화할 경우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제압한 뒤 이란의 핵시설 공습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란이 러시아에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동안보 전문가인 조너선 로드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은 “(상황에 따라) 이란이 러시아에 방공 무기체계나 첨단 전투기, 핵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기술적인)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의 이란 의존도가 높아져 이란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FP에 말했다.
중동 관심 쏠리면 우크라전 유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세를 바꾸기 위한 카드로 이번 사태를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관심이 중동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인 지원이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유럽 각국의 고위 관계자 사이에선 “러시아는 서방을 분열시키고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켜 (나토 중) 누군가가 너무 힘들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다”(아르티스 파브릭스 전 라트비아 국방장관)는 등의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중동이라는 두 개의 전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황성우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정가에 미치는 유대계의 입지 등 정치적인 여건을 고려할 경우 이스라엘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은 유럽 주요국에 떠넘길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이어 “전비 부담이 높아지면 프랑스·독일 등이 우크라이나 측에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종용할 가능성도 커진다”며 “러시아 입장에선 이번 사태가 굉장히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우크라 무기지원 안해
다만 러시아가 이스라엘과 오랜 우호 관계를 깨고 중동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긴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러시아계 유대인의 비중이 높고, 현재도 이스라엘 내 러시아어 구사자가 150만명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만 하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주 회동할 정도로 양국 정상 간 관계도 두터운 편이다.
실제로 과거 러시아는 친이스라엘 행보를 자주 보였다. 러시아는 이스라엘이 2018년 연말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국경 아래 파놓은 침투용 땅굴을 파괴하는 작전을 벌이자 이를 지지했다. 또 양국은 2019년 3월 시리아에서의 외국군 철수를 논의할 실무그룹을 구성하며 협력했다.
이스라엘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서방 국가들과 달리 사실상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을 막기 위해 ‘아이언 돔(Iron Dome)’ 방어체계 등을 여러 차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스라엘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이란이 드론 등 무기 제공을 빌미로 밀착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시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는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러시아가 테러리스트 국가인 이란과 가까워지는 것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회담 통해 관여 폭 넓히는 푸틴
개전 나흘째인 10일까지 러시아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히진 않으면서도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크렘린궁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찾은 모하메드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와 만나 가자지구 분쟁을 포함한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측도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른 시일 내 러시아를 방문해 중재를 요청할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압델 하피즈 모스크바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는 로이터통신에 “압바스 수반이 모스크바에 오기로 합의됐다”며 “우리는 언제 방문이 이뤄질지 크렘린궁의 공식 성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지만, 하마스와는 과격한 무장투쟁 등 노선상 갈등을 빚으며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다. 현재 이스라엘 서남쪽에 자리한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서안지구를 총괄하는 상황이다. 앞서 압바스 수반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막기 위해 유엔의 개입을 호소한 만큼 방러 계획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러시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하거나 군사적 관여를 하진 않았다”며 “현재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근혜 절박해서 바꾼 ‘당색=빨강’…유승민 대놓고 파란옷 입었다 [박근혜 회고록 4] | 중앙일
- '나솔' 16기 옥순 "영숙, 명예훼손으로 고소…큰 싸움 될 것" | 중앙일보
- 문과 조깅하던 노 한마디에…'청와대 미남불' 110년 비밀 풀렸다 | 중앙일보
- 2028 LA올림픽, 야구·스쿼시 채택 유력…밀려날 위기의 종목은 | 중앙일보
- 모텔서 딸 낳고 창밖 던져 살해한 40대 여성 "아빠 누군지 몰라" | 중앙일보
- "폰 무음으로, 3시간 죽은 척 했다"…하마스 덮친 음악축제 | 중앙일보
- 年 2억8000만원 번 중학생, 미성년 사장 390명…뭐해서 벌었나 | 중앙일보
- 두 딸 끌려가자 엄마는 절규…SNS 쏟아진 하마스 납치 영상 | 중앙일보
- "홍삼 먹어보니" 조민도 삭제 당했다…적발 3배 폭증한 이 광고 | 중앙일보
- "이젠 '초밥왕' 만화가가 내 단골"…일본 미쉐린 별 딴 최초 한국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