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맺기 서투른 아이들, 풋풋한 시절 담아낸 이 소설

김성호 2023. 10. 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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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198] 최참치의 성장소설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

[김성호 기자]

인간에겐 각자 특정한 시기, 꼭 만나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어느 자락에서 스치듯 만난 관계와 한 마디 칭찬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듯이, 어떤 이야기가 삶 전체를 끌어올리기도 하는 법이다. 거듭 무너지는 삶 가운데 저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가도록 하는 동력이 되어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몇 편쯤은 있는 것이다.

성장소설이며 청소년소설이 문학의 한 분과로 취급되는 데에도 이 같은 영향이 있다. 처음 세상과 맞닥뜨려 격동의 시절을 지내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이 같은 소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파문을, 변화를 일으키는 덕분이다. 문학의 본령이 인간을 움직이는 데 있다면, 소위 청소년소설 만큼 제 역할을 해내는 것도 흔치는 않을 테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장소설의 대표 격이다. 이 소설이 수많은 이들에게 흔치 않은 영감을 던졌기 때문일 테다. 수십 년, 심지어는 백년을 훌쩍 넘는 시차를 두고도 이들 작품이 오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과연 이들이 고전이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새 시대의 성장소설과 청소년문학이 더 많이 쓰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롭게 등장하는 새 독자에겐 언제나 그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데미안>과 <호밀밭의 파수꾼>이 닿지 못한 자리, 한국 청소년 문학은 과연 오늘의 독자를 움직여내고 있는 것일까.

 청소년 소설로 남은 학창시절
 
▲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 책 표지
ⓒ 모두의책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는 최참치가 발표한 두 번째 장편이다(2023년 7월 출간). 전작 <종말의 소년>으로 대전의 현대사를 묵시록적 세계관 가운데 녹여낸 그가, 다시금 더없이 현실적이며 풋풋한 이야기를 독자 앞에 내어놓았다. 쓰인 시기로 따지자면 <종말의 소년>에 앞서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가 먼저 나왔다는데, 모두의책 협동조합과 두 번째 출간계약을 맺고 후반부를 추가로 붙여넣은 뒤에야 정식출간에 이른 모양이다.

때는 2000년대 중반의 대전, 주인공은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는 중학생 태인이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던 그는 입시 필기시험에 낙방하며 예고진학에 실패한다. 공부엔 영 흥미가 없던 그는 인문계 진학까지 포기하고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소위 노는 아이들로 가득할 거란 걱정도 없지 않았으나 막상 시작된 고교생활은 의외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친구, 흥미로운 수업, 열의를 다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이 학교생활에 활력을 더해준다. 제 친구를 따돌리는 급우들의 폭력 앞에 움츠려들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그에 저항하려는 모습이 나름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학생이라 해서 학교생활이 전부인 건 아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온라인 게임에 열을 올리던 그는 게임을 매개로 중학교 시절부터 여학생 채연을 사귀었다. 함께 일상을 나누던 둘이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휴대폰도 흔치 않던 시절, 매일 게임에 접속해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게 고작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남학생과 대전에선 제법 잘 사는 지역에 사는 모범적인 여학생의 연애를 주변은 그저 곱게 봐주지 않는다.

소설은 저자 최참치의 자전적 이야기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기록이 유달리 많은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소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으로 친구를 사귀는 모습에선 아직 관계맺기에 서투른 아이들의 풋풋함과 어색함, 설렘이 그대로 묻어난다. 취향이 맞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유익함이며, 좀처럼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이들과도 어떻게든 어울리는 상황 또한 학창시절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함께 시험을 준비하고 휴대폰을 빌려 이성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사소하지만 진지한 기싸움과 몸싸움을 벌이고, 괜히 저를 괴롭히는 이들과 날선 긴장을 유지하는 사건들이 그 또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일으킨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인 태인의 시선으로 제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은 누군가에겐 오래 잊고 살았던 기억을, 누군가에겐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다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부재하고, 문학적 상징이나 압축적인 구성, 흥미진진한 전개가 주는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은 아쉽다. 작품 가운데 등장한 여러 에피소드와 캐릭터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한 독자라면 지루하거나 다소 시시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듯하다.

하루키 신작 연상되는 고교 러브스토리

그럼에도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는 갓 성인이 되어 학창시절을 돌아보는 작가의 풋풋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이다. 한편으로 근래 한국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과 의외의 공통점도 엿보인다. 그저 우연이라 하기엔 놀랄 만큼 비슷한 설정으로 서로 전혀 달리 전개하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두 소설을 연달아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색다른 감상까지 이는 것이다.

하루키가 다른 수많은 작품에 앞서 먼저 쓴 초기작이라 알려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하루키의 2023년작 장편소설인 이 책 첫 장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나'의 이야기다. 그에겐 풋풋한 만남을 이어가는 한 살 어린 여자친구가 있다. 에세이 대회 수상자로 연을 맺은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간다. 오가려면 한 시간이 더 걸리는 다른 지역에 살며 편지를 통해 평소의 고민이며 생각을 주고 받는 둘의 관계가 여러모로 최참치의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를 떠올리게 한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온라인게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참치는 '창세전쟁'이란 게임을 명확히 언급하는 반면, 하루키는 이를 게임을 연상시키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교차하여 풀어가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십대 후반의 나이, 처음 갖는 이성과의 풋풋한 관계, 아직 제 감정을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이 솟구치는 감정과 만나며 빚어지는 상황들은 꼭 그 나이 때 독자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듯하다.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는 여기에 더하여 중학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과 외고부터 인문계, 예술계, 실업계로 나뉜 학교의 구분, 이에 대한 주변과 학생들 자신의 인식, 또 이를 둘러싼 부모의 부에 대한 영향 등을 단편적이지만 흥미롭게 언급한다. 비록 2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늘의 십대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지 않은 이야기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성장은 그것이 성장인 줄도 모르고 이뤄진다. 이 시대 청소년에게 <너의 어제를 노래하며>가 미칠 영향이 어떤 것일지 한 명의 독자로서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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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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