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옷에 쏟은 커피... 자책과 짜증이 감사로 변한 이유

이유미 2023. 10. 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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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책에서 배운 '화살론', 불평 대신 현재에 집중하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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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기자]

며칠 전의 일이다. 주말을 맞아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번개맨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조수석에 앉으려는 찰나 마침 손에 든 커피 컵이 차 문에 부딪히면서 상아색 카디건으로 쏟아졌다. 새하얀 카디건이 군데군데 짙은 황토색으로 얼룩졌다.

순간 내 속에서는 화가 솟구쳤고, 곧바로 나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졌다. 격앙된 목소리로 "아 짜증 나, 이래서 어떻게 밖을 돌아다니나. 칠칠치 못하게 이게 뭐야" 좁은 차 안이 들썩이게끔 불평을 쏟아냈다. 마침 뒤에 앉은 둘째까지 큰 소리로 울어댔고 그 소리에 더 화가 난 나는 욱해서 남편에게 차를 돌리자고 말했다. 
 
 하마터면 못 볼뻔 했던 번개맨 공연,무사히 보고 왔다.
ⓒ 이유미
 
이에 남편은 내 감정에 동요하지 않은 채, "거기에 화장실이 있을 거야, 얼룩은 지우면 돼"라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이게 어떻게 지워지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왜 커피를 가지고 와서는, 앉을 때 좀 조심히 앉을걸. 암튼 조심하지 못하는 성격 문제야 문제"라며 나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나의 불평으로 인해 공연을 보러 간다는 들뜬 마음으로 한껏 밝아져 있던 차 안의 공기가 묘하게 어둡게 바뀌어 갔다.

모든 문제는 화살에서 비롯된다

마음속에 던져진 부정적인 감정의 불씨가 활활 타올라 갈 때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 불현듯 스쳤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책 내용 중에서 나온, 풀어서 설명하면 2차 화살이라는 말.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1차 화살,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2차 화살이란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 모든 문제는 바로 이 2차 화살에서 비롯된다는 것.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자신에 대해 2차 화살을 쏘며 책망하며 고통에 이른다는 것이다. 

늘 책을 읽고 마주하는 이런 명문장. 명문장을 매번 메모해 놓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실생활에서는 적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 순간 찬물처럼 내 마음의 불씨를 꺼뜨린 명문장에 감사하며, 내게 던져진 일을 찬찬히 정리해봤다. 

커피가 옷에 쏟아진 건 1차 화살이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나의 칠칠치 못함을 자책하는 건 2차 화살. 2차로 모자라 나는 3차, 4차 화살까지 쏘기까지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심화했던 것이다. 

1차 화살이 된 그 상황을 얼른 받아들이고 그 화살을 뽑을 대책, 즉 남편 말대로 화장실을 가서 비누로 대충 얼룩을 지우면 된다. 1차 화살에서 끝내야 더 큰 고통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차 화살로 입은 상처에 2차, 3차 화살까지 맞는다면 그 고통은 너무 거대해질 테니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야 없겠지만

재빨리 생각의 전환을 한다. '그래, 커피를 쏟은 건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야.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른 가서 화장실에서 얼룩을 지우고 즐겁게 공연을 보는 거야.' 속으로 차분히 마음을 되뇌고 나니 빠르게 뛰던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화장실에서 얼룩을 대충 문질러 지웠다. 거울을 보니 다행히도 그 부분이 긴 머리에 덮여 눈에 띄지 않았다. 아까 차 안에서 열 올린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로. 두 아이는 공연 내내 방방 뛰며 좋아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연이 끝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공연장 주변의 캠퍼스를 산책하며 여유로운 주말을 만끽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즐겁게 시간을 보낸 두 아이는 잠들었다. 공기마저 평화로운 차 안에서 남편이랑 대화하다 문득 카디건을 보니, 아주 옅은 얼룩이 보일까말까 할 정도로 말끔해져 있었다. 

아까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내 자신에게 화살을 계속 쏘아댔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신나하는 모습, 가을빛으로 물드는 중인 예쁜 캠퍼스 내부를 이렇게 만끽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까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혜성처럼 떠오른, 책에서 만난 명문장에 또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됐다.

앞으로의 인생길에서 날아올 무수한 1차 화살들은 아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2차 화살을 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임을 새삼 깨닫고야 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마음속 깊이 아로새길 또 나만의 명문장을 만들어본다.

"옷에 커피 얼룩이 져서 속상할 때는, 재빨리 근처 화장실을 찾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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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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