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러운 초능력… 드라마 '무빙' 속 한효주의 진짜 능력은?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3. 10.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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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사진=드라마 '무빙'
초능력이 ‘핫’하다. 이렇게 초능력에 관심이 쏠렸던 때는 유리 겔러 방한 이후 처음인 것 같다.(참고로 유리 겔러는 외계인으로부터 초능력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숟가락 구부리기 등 초능력(?)을 보여준 사람이다. 포켓몬스터 중 윤겔러의 모델이기도 하다)
초능력에 대한 많은 관심은 현재 가장 뜨거운 드라마인 ‘무빙’ 덕이다.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강풀 작가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히어로물 특성에 한국 특유의 정서가 잘 더해진 한국판 어벤져스라고 평가받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나온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 힘이 센 사람, 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 능력자, 절대 다치지 않는 사람 등 초능력자 종합 선물세트와 같은 느낌이다. 그 중 지각 심리학자인 필자의 관심이 꽂힌 인물은 한효주(이미현 역)였다. 한효주는 우수한 안기부 특수 요원 출신으로, 그녀의 초능력은 탁월한 감각 능력이다. 사무실에서 남산 타워에 앉아 있는 연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고, 위층에서 문을 닫고 이야기하는 아들의 대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청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들을 살찌우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한 번 먹은 음식의 재료를 술술 읊어대는 정교한 미각까지. 이런 감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살아가는 데도 너무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극중 한효주 수준의 감각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일상생활이 힘들만큼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작은 소리까지 생생하게 듣는 것은 소리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소리에 대한 민감도가 유난히 높은 사람들이 있고, 나이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음악을 전공하던 친구는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도 않는 스피커의 작은 잡음을 듣고 수리하라고 권유했고, 성인이 될수록 고주파에 해당하는 소리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 교실에서 교사에게는 들리지 않고 학생들에게만 들리는 벨소리를 사용한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한효주와 같은 고감도 청력은 매우 편리한 능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한효주 수준의 청력이라면 듣고 싶은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중에서처럼 아래층에서 요리를 하면서 위층에 있는 아들이 친구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소리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부엌 냄비 안에서 물 끓는 소리, 문 밖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귀뚜라미가 풀숲 사이에서 움직이는 소리까지. 온갖 소리의 향연 속에서 한효주는 ‘제발 조용히!’를 외칠지도 모른다. 이해를 위해 당신이 매우 예민한 통각을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과도하게 예민한 통각을 갖는다면 옷을 입는 것도, 생활 속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작은 부딪힘도 통증을 유발할 것이다. 과연 안정적인 일상을 영유할 수 있을까? 이처럼 지나치게 민감한 오감의 소유자들은 자극의 홍수 속에서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지 힘들게 된다.

하지만 한효주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골라서 듣는다. 필요 없는 소리는 철저히 걸러내고, 필요한 소리만 듣는다. 만화 같은 작위적인 이 설정은 의외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벼운 환담을 나누는 파티. 그 파티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소리의 바다에서 사람들은 앞에 있는 상대방의 목소리에만 집중해 그 소리를 듣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심지어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그 소리에 반응할 수도 있다. 일명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 능력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한효주의 진정한 능력은 민감한 감각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정보만 귀신같이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의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초능력이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초능력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타인과 차별화되는 능력은 나의 생존 무기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인류가 사냥을 하며 먹고 살던 수렵 시기를 상상해 보자. 하늘을 날 수 있거나 힘이 아주 센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은 생존 가능성을 급격하게 올려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날에도 초능력까지는 아니어도 남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조직의 문제점을 빨리 파악해서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든지, 외국어를 쉽게 습득하는 능력이라든지, 타인과 공감하며 위로해 주는 능력 등을 갖춘 사람들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더 큰 성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무빙’ 속 주인공들의 초능력은 적어도 나에게는 딱히 부럽지 않은 능력들이었다. 하늘을 나는 능력, 남들보다 2배 이상의 힘, 상처가 쉽게 아무는 체질 등. 물론 있으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굳이 없어도 내가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효주의 초능력급 주의 능력은 부러웠다. 아마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지금 내 옆에서 일을 그만하라고 보채고 있는 내 아이의 불평 소리를 걸러내며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복잡한 현대사회, 매순간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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