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의 미래가 어둡다 [아시안게임]

김찬홍 2023. 10. 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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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농구, 남자 배구, 여자 배구, 핸드볼 등은 노메달 그치며 충격
협회 지원 부족, 감독들의 전술 부재 등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패배 후 고개를 숙인 남자농구 대표팀의 허훈. 연합뉴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구기종목 대표팀은 냉정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스포츠 축제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8일부로 막을 내렸다.

39개 종목에 선수단 1140여명을 파견한 한국은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를 획득, 목표했던 종합 3위를 달성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금메달 50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종합 메달에서는 일본 보다 2개 더 많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권도, 펜싱, 양궁 등 기존의 효자 종목들과 수영, 배드민턴, 탁구 등에서는 이전의 부진을 완전히 씻어내고 메달을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신규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와 브레이킹에서도 호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한국의 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구기 종목에서는 체면을 구겼다. 금메달을 따낸 한국 남자 축구와 야구에서는 선전했지만, 겨울 구기 종목인 농구와 배구는 이번 대회에서 완전히 자존심을 구겼다. 여자 농구만 동메달을 따냈을 뿐 나머지 종목은 입상에도 실패했다.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던 여자 핸드볼도 2진이 나선 일본에 완패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대회 3연패 도전 실패. 남자 핸드볼은 4강에도 들지 못했다.

패배 후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떠나는 남자배구 대표팀. 연합뉴스

배구의 동반 노메달은 업계에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남자 배구는 대회 개회식도 하기 전 사전 경기에서 12강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 대표팀에 포함된 12명의 연봉 총액이 66억에 달했는데 인도, 파키스탄 등 객관적 전력에서 한국보다 크게 뒤떨어지는 팀들에 고개 숙였다. 남자 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아무 메달도 따지 못한 건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무려 61년 만이었다.

여자배구 역시 국내 리그가 끝나고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13전 전패를 당한데다 아시아선수권에서 6위에 그치고 파리 올림픽 예선에서 7전 전패에 빠지면서 불안한 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아시안게임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베트남에 패하는 등 답답한 결과를 이어가다 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여자 배구가 아시안게임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은 5위에 머물렀던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17년 만이다.

남자농구는 조별리그에서 2진급으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에 단 한 차례도 리드를 가져오지 못한 채 3점슛 17개를 얻어맞으며 패배해 12강으로 내려갔고, 결국 8강전에서 중국에 밀려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남자 농구 대표팀은 최종 7위로 마감했다. 바랐던 금메달은 커녕 역대 남자 농구 최악의 성적이던 2006년 도하 대회(5위)보다도 낮은 성적을 거뒀다.

득점을 올린 뒤 기뻐하는 여자 배구 대표팀. 신화 연합

사실 구기 종목의 부진은 예고됐다. 종목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선수들이 은퇴를 한 뒤 뒤를 이어줄 스타급 선수들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데다, 각 종목의 협회는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각 종목의 국제 대회에서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남자 농구는 이번 대회 직전 송교창(상무), 문성곤(수원 KT) 등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고, 변준형(상무), 양홍석(창원 LG) 등이 대회 직전 급하게 대체 선수로 합류했다.

한국농구협회(KBA)의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은 일찌감치 대회를 준비한 반면, 한국은 제대로 된 평가전 없이 한국에서 국내 프로 팀들과 몇 차례 연습을 하다가 대회 개막을 2주도 안 남긴 시점에서 일본으로 급하게 전지훈련으로 떠났다.

심지어 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해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선수단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코치와 감독의 부재도 문제였다. 다른 국가들은 헤드 코치 이외에도 각 종 코치들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한국 농구와 배구는 감독 1명에 코치 1~2명이 전부였다. 이들이 많은 선수들을 이끌고 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감독들의 전술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농구가 3점 라인 밖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추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국내 리그처럼 빅맨을 거쳐가는 소위 ‘옛날 농구’에 치중됐다. 사실 농구 대표팀을 이끄는 추일승 감독은 장신 포워드들을 활용해 빠른 농구를 활용하려 했지만, 일부 선수들이 부상과 개인 사유 등으로 합류하지 못하자 결국 옛날 전술을 활용하게 됐다.

배구에서도 최근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얘기가 속출하고 있다. 다양한 속공을 통해 빠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윙 스파이커에만 의존하는 이른바 ‘몰빵 배구’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미들블로커의 경우, 외국에서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배치하는 반면, 한국은 신장이 큰 선수들이 수비만을 위해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한국배구협회는 지난 8일 남녀 대표팀 감독 교체, 남녀 경기력향상위원장 퇴진 등 쇄신책을 담은 오한남 한국배구협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농구 일부 선수단은 협회의 개선을 촉구했다. 김종규는 대회가 끝난 뒤 자신의 SNS에 “"지금 반성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 신경 써 주시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협회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편 구기 종목 외에도 투기 종목에서도 이번에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 레슬링은 이번 대회에서 단 한 명의 결승 진출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 레슬링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건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3년 만이고, 은메달도 따지 못한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했던 유도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선 금메달 1개에 그치며 역대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이기흥 회장은 “(기초종목 선전으로) 총 메달 숫자에서 일본을 앞섰지만 한계와 보완점도 뚜렷했다”면서 “선수촌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서 이와 같은 문제점이 왜 생겼는지 정확히 분석하고 평가를 해서 보완하겠다”고 전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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