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초밥왕' 만화가가 내 단골"…日 미쉐린 별 딴 최초 한국인
일본에서 ‘스시’로 미쉐린 별을 딴 최초의 한국인 셰프 문경환(36, 일본 활동명 쇼타). 현지에서도 그는 ‘초밥왕’ ‘덕업일치의 상징’ ‘의지의 한국인’으로 통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접한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푹 빠져 요리사의 꿈을 키운 그다. 2019년 11월 도쿄 아자부주반에 오픈한 그의 가게 ‘스시야 쇼타(寿司屋 祥太)’는 경쟁이 치열해 현지에서도 예약이 어려운 가게로 유명하다.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64)도 단골 중 하나다.
‘스시야 쇼타’는 ‘미쉐린 가이드 도쿄 2021’에 처음 이름을 올려, 3년째 ‘1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스시야(스시 전문점)만 3000개가 넘는 미식의 격전지 도쿄에서도 흔치 않은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셈이다. 미쉐린 스타 획득 이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7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이하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났다.
Q :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꿈을 키웠다. 활동명과 상호도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던데.
A : 만화는 홋카이도 시골에서 자란 ‘쇼타’라는 소년이 도쿄 긴자의 한 스시야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나는 부모님이 논산에서 딸기 농사를 하셨다. 막연히 농부를 꿈꾸다 중학교 3학년 때 만화를 접하고 꿈이 바뀌었다. 스시라는 소재보다는 주인공의 열정에 매료됐던 거 같다. 사실 그때는 스시가 뭔지도 잘 몰랐다.
Q : 초밥은 언제 처음 접했나.
A : 제대로 된 스시는 군 제대 후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먹었다. 만화 속 표현처럼 ‘우주를 날아다니고 박수가 저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서울 스시를 경험하니 일본 본고장의 스시는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14년 전 무작정 도쿄로 날아갔다.
Q :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도 ‘스시야 쇼타’의 존재를 알고 있나.
A : 우리 가게 단골 중 하나다. 본인의 만화를 보고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에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다. 감정 표현이 많은 분은 아닌데, ‘맛있다’는 말은 꼭 해주신다.
Q : 타국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
A : 언어가 문제였지, 차별로 힘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스시를 배우러 왔다는 것에 신기해하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힘들 때는 대한민국 대표로 도쿄에 와있다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그럼 이상하게 책임감이 생기더라.
Q : 도쿄 긴자의 명가 ‘스시 카네사카’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A : 처음 1년은 손님 응대와 설거지만 했다. 그러다 주방으로 들어가 재료 손질하고, 선배들 밥을 차리면서 서서히 실력을 쌓았다. 내 손으로 만든 스시를 손님에게 내는 데까지 대략 6년이 걸렸다. 그래도 나 정도면 빠른 편이다. 스시 장인 지로(97)상 밑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10년 넘게 다시마끼(일본식 계란말이)만 하는 분도 있다.
Q : 보수적이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인의 입맛을 어떻게 사로잡았나.
A : 가성비다. 저렴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생선, 그래서 고급 스시야에서는 다루지 않는 생선들로 승부를 봤다. 정어리 같은 생선이 대표적이다. 정어리는 열 마리에 1만5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핀셋으로 일일이 가시를 뽑아줘야 해서 손질만 1시간 이상 해야 한다. 까다롭긴 하지만 맛은 꽤 훌륭하다.
Q : 스시야 쇼타의 오마카세 가격은?
A : 처음에는 1만3000엔(약 11만7000원)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2만3100엔(약 20만9000원)이 기본이다.
문경환 셰프는 최근 서울로 잠시 주방을 옮겼다. 4일부터 14일까지 파르나스 호텔의 일식 레스토랑 ‘하코네’에서 진행하는 ‘스시야 쇼타오마카세’ 프로모션을 위해서다. 1인당 30만원짜리 식사인데, 국내에서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오픈 하루 만에 11일 치 예약이 모두 끝났다. 문경환 셰프는 “섭외를 위해 도쿄까지 찾아온 여인창 파르나스 호텔 대표의 정성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면서도 “한국 분들께 제 요리를 선보이는 보람이 무엇보다 크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문경환 셰프는 ‘제주산 다금바리 회’ ‘옥돔술찜’ ‘완도산 전어초밥’ 등 20여 가지 음식을 내놨다. 매서운 눈빛, 절도 있는 손놀림과 달리 테이블 건너편 손님에게는 살갑게 대했다. 손님 8명에게 공평하게 말을 걸고, 각각의 취향을 파악하면서 맛을 조율했다. “기름기 적은 대신 생선 고유의 향과 맛이 선명해 저는 여름 참치를 더 좋아해요” 같은 설명도 생생했다.
도쿄 아자부주반에 있는 ‘스시야 쇼타’는 전체가 7석에 불과하다. 하루 세 차례 7명씩, 최대 21명의 손님만 받는데, 이미 내년 1월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단골을 위한 자리를 미리 빼두는 편이라 예약이 쉽지 않다. 단골과의 의리 문제도 있지만 “손님 취향에 맞춘 초밥”이 가장 훌륭한 초밥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어서다. “내가 잘하는 음식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내는 것”이 진정한 오마카세(요리사 특선 음식)라고도 했다.
Q : 도쿄에서 일과는?
A : 아침 5시에 일어나 스쿠터를 끌고 도쿄 도요스 시장에 간다. 그날그날 좋은 생선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가서 눈으로 봐야 한다. 단골에 따라 그날의 메뉴와 재료는 달라진다. 장보고 가게로 오면 아침 8시쯤 되는데 그때부터 재료 손질을 하고 정오에 첫 손님을 맞는다.
Q : 남는 시간엔 주로 뭘 하나.
A : 월요일은 쉰다. 예전에는 농구‧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다 관뒀다. 손을 다치면 안 되니까. 유일한 취미는 다른 가게에 초밥 먹으러 가는 거다. 서로 미묘한 경쟁심을 느끼며 음식을 주고받는 게 재밌다. 사실 초밥은 손에 쥐는 것보다 먹는 걸 더 좋아한다.
Q : 초밥이 질릴 만도 한데.
A : 매일 다른 취향의 손님을 만나기 때문에 질릴 틈이 없다. 새로 온 손님을 만족시켰을 때의 쾌감이 엄청나다.
Q : 주력 메뉴가 있나.
A : 시그니처가 없는 게 내 시그니처다. 1년 내내 특정 주력 메뉴를 올린다는 게, 단골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계절에 맞게 다양한 제철 생선을 올리는 게 최선이다.
Q :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뤘는데.
A : 중3 때 때 세운 최종 목표가 ‘도쿄에서 초밥 한번 손에 쥐어보자’였다.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목표를 이뤘다. 다음 꿈은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 가게를 차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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