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결과 기다리다 눈감은 국군포로…딸은 그 소송 이어간다

“아버지 생전에 결과가 나왔다면 좋았을텐데….”
한미숙(61·가명)씨가 수화기 너머로 말끝을 흐렸다. 탈북민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물망초로부터 ‘국군포로였던 아버지 고(故) 한재복(89)씨의 소송을 이어가겠냐’는 질문을 받았던 지난 2월 당시를 떠올리면서였다. 재복씨는 2016년 10월부터 북한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소송을 진행해왔지만,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인 2월 8일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고민 끝에 아버지의 소송을 수계(受繼)받았다는 미숙씨는 “아버지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쟁 때 붙잡혀 노역, 50년 만에 귀향
대를 이은 부녀의 싸움은 7년 전 시작됐다. 재복씨는 1951년 국군에 자원입대했다가 그해 12월 중공군 포로가 됐다. 북한으로 끌려가 1953년 9월부터 북한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탄광에서 노역했다. 2001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국내로 돌아왔다.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그는 2016년 10월 “강제노동으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2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북한 측으로의 송달 문제 등으로 2년 8개월 뒤인 2019년 6월에서야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당시 법원은 북한 정부와 김 위원장에게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이에 소장을 송달할 서류를 한 동안 게시한 뒤 송달이 완료된 것으로 간주하고 사건 심리에 착수했다.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한씨 등에게 각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북한이 국군포로에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본 국내 첫 사례였다.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소송을 진행한 재복씨는 “기대도 안했는데 이런 일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재복씨는 실제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제3채무자로 하는 압류와 추심 명령을 내려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경문협이 법원에 공탁한 북한 저작권료가 사실상 유일한 남한 내 북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를 압류해 배상금으로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남북한 민간교류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경문협은 2005년 12월 31일부터 북한 저작물을 사용한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대신 징수한 저작권료를 북측에 송금해왔다. 하지만 대북제제가 시작된 2009년 5월부터는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왔다. 2018년 5월 9일 기준 공탁 금액은 16억 5200만원이다. 2020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추심명령 신청을 인용했다. 하지만 경문협이 “저작권료가 압류금지 채권에 해당한다”고 집행을 거부하면서 소송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경문협 거부에 추심금 소송 냈으나 패소

그러나 재복씨가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2월 세상을 떠나면서 소송은 딸 미숙씨의 몫이 됐다. 최근 서울동부지법 제2-3민사부는 다음 달 3일을 경문협에 대한 추심금 청구소송 항소심 첫 기일로 지정했다. 사건이 접수된 지 1년 8개월만이다. 미숙씨 측은 8월 통일부가 법원에 낸 사실조회회신서를 토대로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미숙씨를 돕고 있는 물망초 관계자는 “한재복 선생님은 국군포로 분들에게 용기를 준 분이었다”며 “2심에선 긍정적인 결론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쟁 때 북한에 끌려갔다가 2020년 탈북한 국군포로 한병수(92)씨가 8일 세상을 떠났다.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6월 포로가 된 그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2002년 6월 탈출해 중국을 거쳐 국내로 귀환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후 지금까지 국군포로 80명이 국내로 돌아왔다. 한병수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국내에 남은 탈북 국군포로는 11명으로 줄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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