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실장 주특기"…용산, 매일 아침 우유·양파값 따지는 이유

박태인 2023. 10.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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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열린 추석맞이 팔도장터를 깜짝 방문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우유, 삼겹살, 감자, 양파’

최근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 주요 안건으로 올랐던 생필품 중 일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비서실장은 매일 아침 회의 때마다 해당 품목 등 생활 물가의 가격 추이를 확인한 뒤 “당장 수입을 늘려서라도, 가격을 낮출 방안을 살펴보라”는 주문을 내리고 있다. 최근 5% 안팎으로 오른 우윳값과 관련해선 “정작 우유 수요는 줄고 있지 않으냐”며 참모진을 질타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민생의 핵심은 물가”라며 “생활 물가를 중심으로 등락 여부를 매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금리와 환율만큼 우윳값과 양파 가격에 민감히 반응하는 건, 최근 물가 상승 조짐이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올랐다. 지난 4월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이다. 먹거리 지표인 외식 물가(4.9%)와 가공식품(5.8%) 상승률은 평균을 웃돌았고, ‘금값 사과’란 신조어까지 나온 과실 농산물 상승률은 24%에 달했다. 국제유가도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에 급등 조짐을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고유가와 고금리 등 글로벌 변수가 국내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과 이진복 정무수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 실장은 용산 내 '물가 군기반장'이라 불린다. 뉴스1

역대 정권의 지지율은 ‘고물가’, 즉 인플레이션을 겪을 때마다 휘청였다. 여권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MB) 정부다. MB는 임기 중 수차례 고물가 상황과 마주했다. 특히 취임 직후인 2008년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9%까지 올라갔고, 광우병 사태까지 겹치며 지지율은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2009년 하반기 물가를 2%대로 잡고 나서야, 40~50%대의 지지율을 회복했다. 임기 후반에도 배춧값 폭등 등 4%대 후반까지 물가가 치솟아 MB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물가 대책반’을 운영했던 것이 바로 김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비서실장의 주특기가 다름아닌 물가”라며 “MB정부의 기억 때문인지 물가 관리에 총력전을 주문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다만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철학과도 맞지 않고, 수입 확대와 생산구조 개선 등 수급 조절 관여로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란 판단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행이 금리를 연이어 동결하며 발생한 금리 차가 물가 상승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정부 정책이 아닌 통화 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원유 기본 가격이 오르면서 흰 우유를 비롯해 가공유와 치즈,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가격이 일제히 인상하는 가운데 지난 2일 서울시내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이 ‘고물가’ 상황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도 소비자 물가지수가 4.8%까지 치솟으며 인수위에 비상이 걸렸었다.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 10월(4.8%)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물가를 못 잡는 정권은 버림을 받는다”며 5공화국 당시 물가 안정화 정책의 대명사로 꼽힌 김재익 경제수석 일화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관치 정책을 펼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지방을 가든, 순방을 가든 모든 대통령의 행보에 ‘경제 살리기’ 일정을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난방비와 전기세 등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신중론도 적지 않다. 최상목 경제수석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내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중앙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공공요금에 대해선 서민에 부담과 해당 기업의 건전성을 균형 있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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