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뜨락에서] 마지막 사랑

2023. 10.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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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우우’ 내뱉어진 숨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호흡은 꺼져갔다. 쉼 없는 인생이었던 심장이 멈추며 한 사람의 역사가 사라지려 할 때 구급대원들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생명을 붙잡기 위한 강한 압박에 갈비뼈는 으스러지고 산자의 온몸이 땀방울이 되어갈 때 늙고 병약한 노인의 몸에서 미세한 호흡이 시작됐다.

인공호흡기가 꽂혔다. 노인은 시퍼렇게 멍든 몸을 환자복 속에 감추고 홀로 중환자실에서 가냘프게 삶을 붙잡는다. 창백한 얼굴로 수많은 말을 가슴에 담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이다. 의사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인의 아들에게 말했다. 순간 아들의 시간에도 인공호흡기가 꽂혔다. 내쉬는 숨을 다시 들이쉬기가 어렵다. 아들의 들숨과 날숨에는 어머니였던 여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섞여들었다.

삶이 참 무심하다고 아들은 생각한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어머니를 두고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형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힘없이 운전하는 형의 뒷모습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월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 방안에 누워 죽어가던 여인의 말. “죽음을 단순히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에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 궁핍한 삶에서 오는 돈의 힘 앞에서 나는 아니라고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십자가 불빛 아래에서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오랜 세월 육신의 아픔으로 살았던 어머니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기도는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진다. 아들은 천국에 소망을 품고 있는 어머니라 믿었었다. 살아오면서 의심한 적 없었던 확신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깊어질수록 어머니의 믿음이 너무도 차갑게 느껴져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캄캄한 암흑으로 향하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기도 중에 떠올랐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고통과 함께 생명을 붙잡고 계시는 듯했다. 지체할 수 없었다. 서둘러 목포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고 어머니를 지켜 달라고 기도하며 더디게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목포로 향하는 아들의 길에 하나님의 호흡이 내려앉아 어머니의 호흡이 됐다. 뒤로 물러서기만 했던 삶이 죽음 위에 걸터앉아 잠깐의 시간을 허락했다. 어머니의 입에 있던 인공호흡기가 제거되고 아들을 바라보는 눈이 선명하다. “어머니 지금부터 제가 한 말 잘 들으세요. 말하기 어려우면 고개라도 아니면 눈을 깜빡이세요” 눈물을 꾹 참고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아들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섰다. 시커먼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며, 검게 물들고 있었던 죽음 앞에 무방비 상태로 떨고 있었던 어머니는, 아들의 강한 목소리에 눈으로 화답하며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가슴으로 불러들였다. 통증으로 일그러졌던 얼굴과 흔들렸던 눈동자가 평안을 찾아갔다. 내가 목사인데 어머니의 믿음에 왜 시선을 두지 못했는지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아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간다.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육신이 아들과 이별 중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에서 풀려나와 아들에게 묶여 있던 실타래가 공기 중에 팽팽하다. 부유하던 먼지 하나만 얹어져도 끊어져 버릴 듯한 가녀린 실타래. 뜻밖의 목소리가 실려 왔다. “하나님 마지막 날 되게 해주세요” 발길을 돌려 방문을 나가는 아들의 뒤통수를 향해 으스러진 갈비뼈의 통증을 이기며 어머니가 외치고 있었다. 슬픈 아들의 눈빛을 보았던 어머니. 죽음의 공포와 어두움을 벗어나 천국을 소망했으니 괴로워하지 말고 목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이었다.

장진희 사모(그이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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