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이코노믹스] ‘주주 포퓰리즘’ 넘어 기업 적극 투자 유도해야 경제성장

2023. 10. 1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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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창조’와 ‘가치착출’의 경제학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동네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을 잘못했건, 외부 상황 때문이건 상관없이 비판받는다. 주가가 올라갈 때도 남들만큼 오르지 않는다거나, ‘주주환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더 오르지 못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는다. 경영인들은 억울할 때가 많다. 나름대로 노력했고 성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주주들로부터 불만이 쏟아지고 어떤 때는 헤지펀드의 공격까지 받아 혼비백산한다.

이렇게 경영인과 일반 주주 간에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경영인은 투자를 통해 기업의 ‘가치창조(value creation)’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가치창조를 도와주지만 기업이 번 돈을 가져가는 ‘가치착출(價値搾出·value extraction)’이 더 큰 기능을 한다. 가치착출에는 투기의 논리가 지배한다. 입장이 다른데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증시 유통시장, 발행시장 200배
배당·자사주 등 자금 유출 급증

1400만 개인투자자 영합하는
‘주주가치 극대화론’ 결함 많아
기업·정부 책무는 성장과 고용

가치착출이 지배하는 주식시장

이코노믹스

주식시장의 자금흐름을 보자. 주식시장은 발행시장(1차 시장)과 유통시장(2차 시장)으로 나뉜다. 발행시장에서는 유상증자나 기업공개 등을 통해 신주(新株)가 발행된다. 이 돈은 주식시장에서 기업으로 공급되는 것이고 기업의 가치창조를 도와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발행된 구주(舊株)를 사고판다. 이 자금은 기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매입자의 돈이 그 전 주주에게 넘어가는 ‘손바뀜’만 일어날 뿐이다. 따라서 유통시장에서의 거래대금은 기업 가치창조와 무관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통시장이 발행시장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한국의 경우 2022년 발행시장 규모는 22조원이다. 반면 유통시장 거래대금은 3914조원에 달했다. 유통시장이 발행시장의 200배에 가깝다. 한편 배당, 자사주매입을 통해 기업에서 주식시장으로 유출된 돈은 48조원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26조원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순 유출됐다(그림1).

〈그림 1〉 차준홍 기자

이런 흐름은 한국주식시장에 지속된 현상이다. 유통시장 거래대금은 항상 발행금액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순유출도 지속됐고 강화되는 추세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기업으로 유입된 돈은 184조원이었던 반면 유출된 돈은 344조원이었다. 160조원의 순 유출이다. 순 유출에 가속도도 붙어 있다. 2000~2009년 연평균 순 유출은 3조원이었다. 2010~2019년 기간에는 연평균 16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0~2022년에는 연평균 26조원으로 더 높아졌다(그림 2).

〈그림 2〉 차준홍 기자

주식시장이 이렇게 자금 빼내 가는 창구가 되는 것은 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성숙한 기업이 많아지면서 주식시장에서 자금 조달할 필요는 줄고, 배당·자사주매입으로 주주에게 쓰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상장기업들은 자금이 필요할 경우 유상증자는 가급적 피한다. 기존 주주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유보금을 사용하고 더 필요하면 채권 발행이나 은행 융자에 먼저 기댄다. 미국 주식시장의 경우에는 2차대전 후 1980년대 초까지 약간의 순 유출 수준을 유지하다가, 1980년대 이후 주주 자본주의가 강화되면서 순 유출액이 급증했다.

돈 흐름으로 보면 주식시장은 투기가 지배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유통시장에서의 거래는 모두 투기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주식을 절대로 팔지 않고 배당만 받겠다”는 것도 투기행위다. 기업이 배당을 얼마나 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배당을 계속 많이 줄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주식매입액이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전 소유주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자신을 ‘투자자’라고 내세운다. 개인투자자, 기관투자자, 펀드투자자, 투자자문사 등의 표현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투자’라고 하는 활동에서 신주를 매입해 기업 투자 활동에 기여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022년의 경우 투기액 대비 200분의 1가량이다. 대부분은 유통시장에서 투기하는 ‘무늬만 투자자’다.

‘주주 환원’은 정치적 수사

이렇게 투기와 투자를 명확히 구분하면 흔히 사용하는 ‘주주환원’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놓은 것이 있어야 환원받는다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유통시장에서 주식을 산 주주는 기업에 내놓은 것이 없다. 그러니 환원받을 것도 없다. ‘주주환원’은 배당이나 자사주매입을 늘리도록 해 투기이익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용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진짜 투자는 미래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고 인력, 시설, 연구개발 등에 돈을 쓰며 조직적 역량을 발휘해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일이다. 이러한 투자가 결실을 보아 이익으로 나타나야 가치창조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주가에 반영된다. 가치착출은 창조된 가치를 나눠 갖는 것일 뿐이다.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대부분 기업이 투자를 잘할 가능성을 놓고 투기를 하는 것이지 자신이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치창조의 경제학과 가치착출의 경제학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계와 금융계에서는 가치착출이 최대한 잘 되면 가치창조도 잘 이루어진다는 ‘마차를 말 앞에 갖다 놓은’ 이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리인 이론과 결합한 ‘주주가치 극대화론’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경영자의 목표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인들은 자신의 아성(牙城)을 쌓는 등 사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대리인 비용’을 야기시킨다. 대리인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주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해 경영진에 압력 넣는 것을 쉽게 하고, 주식 관련 급여의 비중을 크게 높여 주주와 경영진 간에 인센티브가 합치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면 대리인 비용이 줄어 기업이 효율적이 되고 경제도 효율적이 된다.”

가치착출에 짓눌린 가치창조

그러나 주주가치 극대화론은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논리적·실증적 결함들로 가득 차 있다. 첫째, 주주(株主)는 주식의 주인일 뿐, 기업의 주인은 법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인은 법인과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경영인은 법인의 대리인이지 주주의 대리인이 아니다. 이것은 주식회사가 주주들이 유한책임만 지려고 만들어낸 조직이기 때문이다. 법인에 무한책임을 지우고 주주는 회사가 잘못될 경우 개인재산을 지킬 수 있다. 경영인이 주주의 대리인이 되려면 주주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대리인 이론은 주식 주인을 기업 주인으로 신분 세탁하는 도구가 되어 있다.

둘째, 기업에는 ‘대리인 비용’뿐만 아니라 여러 비용이 발생한다. 전체 비용을 줄여야 효율적이 된다. 주식 급여를 높인다고 경영인이 가치창조에 전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단기 성과로 단기 주가를 올려 주식 급여를 더 많이 받으려는 새로운 ‘대리인 비용’이 발생한다. 셋째, 기업의 효율성은 전략과 조직을 잘 만들고 질 좋으며 값싼 제품을 잘 내놓아야, 즉 가치창조를 잘해야 달성되는 것이다. 주주 이익에 멸사봉공(滅私奉公) 다짐을 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효율성도 마찬가지다.

학계에서 대리인 이론이 지배적인 것은 ‘균형 분석’에 초점을 두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대리인 비용이 문제 되는 이유도 경제는 균형 상태에서 효율성을 확보하는데,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면 비효율적이 된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지속해서 불균형 상태이고 혁신적 변화를 해나가면 이런 전제는 다 무너진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불균형에 기반을 둔 경제학이다. 그러나 슘페터주의자들은 학계에서 비주류이고, 법조계나 금융계에서 대리인 이론만 인용하기 때문에 기업과 주식시장의 관계를 얘기할 때 종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 수세에 몰린 가치창조론

가치창조론은 정치적으로도 수세(守勢)에 몰려 있다. 기업은 주식 시장에서 25%가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투표권이 없다. 가치창조에 관심 갖는 경영인 수는 전체에서 한 줌에 불과하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1400만명을 넘어섰다. 기관투자자에게 돈을 맡긴 국민을 따지면, 특히 국민연금까지 고려하면 전 국민이 가치착출에 절대적 관심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정책도 일반 주주 요구에 맞추려는 포퓰리즘적 경향을 보인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가치창조를 해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 경영자의 책무가 가치창조인 것처럼 정책 담당자의 중요한 책무도 가치창조를 통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가 기업과 주식시장의 중간에서 가치창조와 가치착출 간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잘해야 한다. 가치창조론을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도 더 많아져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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