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의 나무’ 생상스…맛없는 사과면 어때?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1835~1921·사진)는 레오나르드 다빈치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어려서부터 지질학·고고학·식물학에 흥미를 느껴 깊이 공부했으며, 수학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다. 작곡과 연주, 음악비평을 쓰는 틈틈이 시작과 극작에도 손대 한 권의 시집과 광대극을 썼다. 음향학과 신비주의 과학, 로마시대 극장 장식과 고대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철학도 파고들어가 염세주의와 무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 천문학회 회원으로 신기루 현상에 대해 강의하고, 망원경을 직접 설계해 만들고, 일식과 같은 자연현상에 맞추어 음악회를 여는 등 자신의 과도한 호기심만큼이나 다양한 이벤트를 벌였다.
이렇게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생상스의 음악은 과연 어땠을까.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적인 우아함과 균형, 세련미를 갖고 있다. 낭만주의 음악치고는 다소 절충적이고 보수적이다. 생상스는 음악의 모든 장르에 걸쳐 대단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얼마나 작품이 많은지 그 모습이 마치 사과나무에 수백 개의 사과가 달린 것 같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다작이 개별 작품의 밀도를 희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생상스는 낭만주의 작곡가로서 뚜렷한 자기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어쩌면 생상스가 음악 이외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분산했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해 자기만의 개성을 구축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다작에도 불구하고 그중에 ‘그저 그렇고 그런’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생상스의 지지자들 반격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과나무에 열려 있는 수많은 사과 중에 맛없는 사과가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야?”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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