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의 마켓 나우] 디지털 이어 ‘토큰’으로 진화하는 화폐
역사적으로 통화시스템과 경제 발전은 밀접한 관계다. 무거운 동전 궤짝을 들고 거래하러 다녔다면 지난 500년간 세계경제가 급팽창했을까. 신뢰받는 중개인이 원장(元帳)에 기록하는 신형 화폐는 배송과 정산을 둘러싼 시공간 제약을 극복했다. 통화란 사실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는 정보’다. 그 정보는 오로지 중앙은행처럼 신뢰를 확보한 기관이 관리한다. 정보기술(IT)은 종이 원장 자리를 디지털 원장에 넘겼다. 화폐는 빠르게 탈물질화·디지털화를 거쳤다. 그 결실은 거래정보의 실시간 업데이트, 사회경제적 비용의 획기적 축소 등이다.
돈 꺼낼 일이 크게 줄었다. 화폐와 결제시스템의 혁신으로 새로운 유형의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반대로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새로운 통화시스템의 출현을 자극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통화시스템이 또 다른 거대한 도약의 정점에 섰다고 선언한다. 탈물질화·디지털화에 이은 화폐의 다음 단계는 토큰화(tokenization)인데, 그 핵심은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가능한 플랫폼에 기록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기능을 활용해 ‘홍길동의 계좌에 얼마가 들어있다’ 같은 단순정보가 아니라,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자산이전이 일어나는 ‘조건부 정보’까지 처리할 수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지급·결제 조건에서도 오류나 부정한 대금 수취 위험 등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금융중개기관에 대한 의존이 줄어 결제 수수료가 낮아지고 즉각적인 대금 수령이 가능해진다.
금융의 주역은 정보관리인 역할을 하는 중개인이다. 그는 수수료를 받기까지 신뢰구축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 금융거래정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조건부 처리하게 되면 신뢰비용 절감에 더해 보이스피싱같은 범죄 예방도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토큰 화폐’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올해 7월 발표된 BIS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반 이상이 CBDC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2030년까지 24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CBDC 도입이 예상된다. 지난 4일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테스트의 중심은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와 최종 결제 등에 활용되는 ‘기관용 CBDC’이다.
미래 통화시스템에 대한 비전 없이 통화·결제·금융서비스에서 혁신을 최대한 누릴 수 없다. CBDC는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아니다. CBDC는 새로운 금융시장 인프라로서 사회경제적 구조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키고, 민간 혁신의 장을 열 것이다. 이런 중요한 테스트에서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기대된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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