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죽음의 다리, 희망의 다리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와 자살예찬론자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불교이론을 서양 언어로 소개하는 과정에서의 ‘악마의 편집’일 뿐, 책을 읽어보면 누구보다 삶을 예찬하기에 따듯한 위로를 받게 된다. 『행복론과 인생론』(혹은 『소품과 부록』) 중 ‘자살에 대하여’에서 그는 자발적으로 생을 마감한 지인·친구·친척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묻는다.
마포대교는 서울대교라 불렸다. 서울의 자랑이었던 다리가 어쩌다 자살 꼬리표를 달게 됐을까. 밤섬의 처녀귀신 때문일까.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을지 모른다. 1995년 지하철 5호선이 개통하며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던 한강에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이제 여의도 한강공원도 익숙하다.
삶의 공포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설 때,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다. 탁 트인 한강 바람이 고파 전철 타고 찾아간 마포대교는 막상 걸어보면, 놀랄 만큼 슬럼화된 모습에 정신이 건강한 사람도 착잡해진다.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청동조형물과 조경식물들은 괴기스럽고, 높다란 안전난간은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온 ‘우리 삶은 종신형 감옥살이’라는 말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난간을 훼손한 자에게 거액의 벌금을 물리겠다는 안내문에선 웃음과 오기가 난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미수의 미숙함을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여의도에서 마포 방향 5차선 중 2차선에 보행정원을 만들면 어떨까. 뒤셀도르프의 아스팔트가 변신한 라인강변 산책로처럼. 서행 차량들이 시민 치안에 파수꾼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밤에는 아름다운 불빛이 춤추고, 불꽃놀이가 1년 한번이 아닌 매일, 매주 펼쳐진다면…. 마포대교는 로맨틱한 설렘과 행복이 자라는 명소가 되고, 희망의 상징공간이 되리라.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정신과에 가봐야 한다. 죽고 싶을 때, 그때가 정말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때다. 희망이 필요할 때 마포대교에 가고 싶다.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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