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똥개 언니의 편지
똥개 언니의 편지
“이보다 더한 지옥을 본 적 없습니다.”
얼마 전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발견된 번식장을 본 한 활동가가 SNS에 올린 말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1500여 마리 개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식사 시점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텅 빈 위, 분비물과 변으로 완전히 막혀버린 항문, 변형된 관절과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눈과 귀. 냉동실에서는 문구용 커터 칼로 배가 갈린 모견과 제각각의 표정과 동작으로 얼어붙은 자견의 사체들이 나왔다. 이곳은 국가가 허가한 번식장이었다.
한 달 전에는 대규모 식용 개 도살장이 적발돼 SBS 〈TV동물농장〉에 방영됐다. 앞서 소개한 곳에서는 개를 작게 만들기 위해 개량하다 콧구멍이 너무 작아져 호흡곤란이 수시로 오는 강아지가 발견됐는데, 이 식용 개 도살장 관련 인터뷰를 통해 더 큰 개를 교배시켜 더 많은 고기를 얻게 만든다는 증언이 나왔다.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예쁜 강아지를 판매하기 위해 더 작게 만들거나, 더 많이 도축할 수 있게 크게 만들거나. 사이즈와 종이 어떻든 그저 다른 지옥이 배정돼 있을 뿐이었다.
나와 함께 사는 김정원은 평생 실외에서 생활하다 3세(추정) 때 구조돼 임시보호를 거쳐 나에게 왔다. 김정원은 원래 산을 지키는 개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10kg이 조금 안 되는 이 강아지는 겁이 많아 처음에는 어린아이만 봐도 벌벌 떨었다. 밖에서 견뎌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 것을 추측하고 복기하기에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짧아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김정원에게 눈과 입을 맞추고 심호흡을 할 뿐이다. ‘누렁이’ ‘시골개’ ‘똥개’ 비주얼 그 자체인 정원이는 겨울엔 패딩을 입고 여름엔 우리 집 가장 시원한 자리를 차지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로 선발됐고, 용산구 뉴스레터에도 소개됐다. 정원이는 공장에서 나온 티컵 강아지와 개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강아지, 그 모두인 존재다. 출산 경험이 있는 모견이고, ‘잡종 누렁이’라 집 안으로 평생 초대되지 못하고 마당을, 컨테이너를, 어느 음식점 뒤 공터에 매인 채 키워졌다가 산 지킴이가 될 뻔한 똥개다. 김정원은 옷을 입고 외출할 때는 ‘애완견’ 취급을 받지만, 목줄만 하고 다닐 땐 ‘이런 애도 집에서 키워요?’ 소리를 듣는다. 반려견 순찰대 조끼를 입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지만, 조끼가 없을 때는 느닷없이 “똥 싸지 마!”라는 소리를 듣는다. 외모와 복장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이 사회의 습성은 가장 약자인 동물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노골적으로 극대화된다.
가끔 생각한다. 똥개 소리가 싫어 정원이에게 유명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패딩을 입히고, 순찰대에 지원해 조끼를 입히는 일이 이 사회에 김정원의 존재를 승인받기 위해 버둥대는 나의 세레모니는 아닌지. 보디 포지티브를 외치면서도 중요한 모임에서는 반드시 화장하고 늘 옷가게에서 익숙한 기준으로 고민을 거듭하는 내가 여기 그대로 있다. 그래서 입 주변이 까만 내 사랑 누렁이를 보고 있으면 있는지도 모르는 미래로 이 아이를 안고 도망치고 싶다. 우리 애도 꽤 반려견 같지 않냐며 힘껏 전시하는 일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해야 정원이의 세상을, 곽민지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잘 모르겠으니 일단 이 이야기를 쓴다. 이 아이가 나에게 열어젖힌 세상을 지면에 올려본다. 우연히 마주친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결성된 우리 가족처럼 당신과 우리의 세계를 함께 바꿀 어떤 씨앗으로 어딘가에 잘 숨은 채 배양되다가 피어나길 바라며. 사지 마세요, 먹지 마세요, 버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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