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고진영의 조언…“한 번이라도 해외 진출을”
“후배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 무대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도전하면 그만큼 많은 걸 얻을 수 있으니까요.”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이 주춤한 편이다. 9일 김효주가 우승했지만, 예전과 같은 기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 골프에서 최장 기간(163주) 세계 1위를 지켰던 고진영(28)을 9일 홍콩에서 만났다. 현재 그의 랭킹은 세계 3위다.
전날 끝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아람코 팀 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고진영은 “내가 1라운드부터 치고 나가니까 다들 우승할 거라고 예상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골프에서 ‘당연한 우승’이란 없다. 내가 지난 6년간 LPGA투어에서 뛰면서 깨달은 사실”이라고 했다.
고진영은 지난 여름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녔다. 7월 말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뒤 8월 초 귀국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이어 AIG 여자 오픈이 열린 영국을 거쳐 8월 말 CPKC 여자 오픈 개최지인 캐나다로 향했다. 고진영은 “이동이 잦다 보니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대회 때는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헷갈리더라. 그 심했던 여름 더위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둘째 날에는 시차로 인해 아예 잠을 자지 못해서 결국 기권을 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 고진영은 CPKC오픈을 마친 뒤 한 달 넘게 휴식을 취했다. 고진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그동안 잘 쉬었구나’라고 느꼈다. 휴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아람코 팀 시리즈는 LET가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손을 잡고 출범시킨 시리즈 대회다. 싱가포르와 미국·영국·홍콩·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차례로 열린다. 대회 총상금은 100만 달러(약 13억5000만원) 정도지만,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에게 적잖은 초청료를 지급한다. 이 돈은 천문학적인 오일머니에서 나온다. PIF는 한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대립각을 세웠던 LIV 골프의 자금줄이기도 하다.
LIV 골프는 지난 6월 PGA 투어와 전격 합병을 선언했다. LIV 골프는 그러면서 소문이 무성했던 여자골프계 진출도 중단했다. 고진영은 “LPGA 투어 구성원들 가운데 일부는 LIV 골프의 적극적인 투자를 내심 원했다. 선수들끼리도 ‘얼마 받으면 갈래’라는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면서 “PGA 투어처럼 LPGA 투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현실을 중시하는 그룹과 가치를 존중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나는 2018년 LPGA 투어 데뷔 때부터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만약 새로운 무대가 생기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쪽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세계 여자골프의 판도를 묻자 그는 “예측불가”라고 답했다. 고진영은 지난 8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개막 기자회견에서 한국 여자골프의 현실을 에둘러 이야기했다. KLPGA 투어가 발전해 국내 선수들의 환경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해외 진출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고진영은 “그 인터뷰 이후 주위에서 ‘너는 아직 그런 조언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서 더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도 “나도 6년 전 LPGA 투어 도전을 놓고 생각이 많았다. 국내 선수들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그래도 후배들이 한 번쯤은 해외 진출을 고려하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LPGA투어 통산 15승을 기록 중인 고진영은 19일 경기도 파주 서원힐스 골프장에서 개막하는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2021년 우승했던 대회지만, 지난해에는 손목 부상 여파로 3라운드를 앞두고 기권했다.
고진영은 “속으로 ‘약해진다, 약해진다’고 하면 정말 약해지더라.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제 LPGA 투어는 4개 대회가 남았다. 체력을 비축해서 올 시즌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홍콩=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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