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울지 못하는 소년…괴물신인 홍사빈의 '화란'

어환희 2023. 10.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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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 개봉 예정인 영화 ‘화란’은 불우한 10대 소년, 연규가 겪는 지옥 같은 현실을 다룬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정부터 살아남기 위한 강렬한 눈빛까지, 얼룩진 현실 속 연규의 복잡한 내면이 신인 배우 홍사빈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됐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한 소년에게 네덜란드는 꿈의 나라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네덜란드 여행 책자를 상자에 간직하며 떠날 날을 기다리지만, 현실은 그를 조직폭력의 세계로 이끈다. 11일 개봉하는 영화 ‘화란’은 18살 소년 연규(홍사빈)의 이야기다.

학교폭력, 가정폭력에 이어 조폭까지 다루는 영화는 2시간 넘게 피비린내 나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말 그대로 ‘화란(禍亂·재앙과 난리)’이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됐는데, 당시 ‘HOPELESS’ (절망적인)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나면, 연규가 그의 이상향인 ‘화란(和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옥 같은 현실 속 소년에게 희망이란 게 있을까. 영화가 관객에게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화란’을 통해 장편에 데뷔한 김창훈 감독은 지난달 22일 언론 시사회에서 “폭력적 환경이 한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했다. 누아르 영화보다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규를 연기한 배우 홍사빈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을 앞둔 26살 신예다. 불우한 10대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단편영화와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티빙), ‘무빙’(디즈니+) 등에서 모습을 비췄지만, 장편영화 주연은 처음이다. 신인 같지 않은 연기력으로 관객을 연규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괴물 신인’이란 찬사를 받는 이유다.

지난달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제가 잘 가꿔줄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욕심에 연규라는 인물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캐릭터 표현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오는 11일 개봉 예정인 영화 ‘화란’은 불우한 10대 소년, 연규가 겪는 지옥 같은 현실을 다룬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정부터 살아남기 위한 강렬한 눈빛까지, 얼룩진 현실 속 연규의 복잡한 내면이 신인 배우 홍사빈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됐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정폭력을 당해 눈 주위가 찢어지는 등 극한의 상황에서도 크게 표현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며 “화를 내거나 울어버리는 직설적 표현을 하면, 인물이 단순해지고 해석 여지가 좁아져 (관객이)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를 참고하는 등 캐릭터 연구에도 골몰했다고 했다. 그는 “직접 표현하기보다 절절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 주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며 “연규 캐릭터도 그렇게 나타내기 위해 그동안 찍었던 영상을 많이 보고, 거울 앞에서 여러 표정을 짓는 등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송중기, 김종수, 정만식 등 선배 배우들이 그런 그를 믿고 기다려줬다고 한다. 그는 “저 같은 신인에게 그렇게 많은 테이크와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 주신 그 현장은 정말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조직의 중간보스 치건을 연기한 송중기에게 아주 고마웠다고 했다. 그는 “자기 소리를 못 내는 연규에게 치건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송중기 선배 역시 현장에서 내게 그런 존재였다”고 말했다.

“(송중기) 선배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너 편한 대로 하라’였다”며 “극 중 치건과 매운탕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마지막에 애드리브로 했던 ‘고맙습니다’라는 연규의 대사는 100%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뒷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첫 장편으로, 그것도 데뷔 5년 만에 칸에 입성했다. “칸은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감히 하지 못했다. 바짓단이 접힌 채로 레드카펫에 올라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는 그는 “충분히 즐기지 못해 꼭 다시 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연기를 향한 단호한 마음가짐도 드러냈다. “칸에 갔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닌 것 같다”며 “운이 좋아 감사한 타이틀과 기회가 주어졌지만, 안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뿐 아니라 연출에도 관심이 많다. 배우 문근영이 이끄는 ‘바치 창작집단’ 연출부에 몸담고 있고, 대학로에서 꾸준히 연극 연출도 한다. 그는 “배우가 꿈이었지만, 큰 틀에서 창작자로서 활동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당장 11월 대학로에서 열릴 연극 ‘소공녀’를 준비하고, 기말고사를 잘 보는 게 목표”라는 포부를 묻자 담담하게 답했다. “지금은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혜택을 보는 면도 있지만, 나중에도 역할마다 어울리는, ‘그럴싸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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