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m마다 풍력 터빈 윙윙… 新공법으로 비용·환경 ‘두토끼’

박세환 2023. 10. 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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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현장을 가다]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사업단지
지난 5일 전북 고창군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에서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육지에서 10㎞ 떨어진 바다 위에 설치된 풍력 터빈 20개는 연간 155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전력은 해상 변전소(가운데)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육지로 운반된다. 한국해상풍력 제공

지난 5일 전북 고창군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종합상황실. 3층 전망대에 올라 들여다본 망원경에는 탁 트인 바다 저편으로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육지에서 10㎞가량 떨어진 바다 위에 3메가와트(㎿) 규모의 풍력 터빈 20개가 설치돼 있었다. 해수면으로부터 90m 높이에 있는 기둥 상부에 터빈이 있다. 여기에는 65m 길이의 블레이드(날개) 3개가 장착돼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은 연간 155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전북 고창·부안군 내 약 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서남해 해상풍력 단지는 2012년 설립된 ‘한국해상풍력’이 관리하고 있다. 한국해상풍력은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6개사의 공동 출자로 출범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발전 공기업이 합심해 운영하는 회사가 추진 중인 서남권 해상풍력 사업은 단순히 풍력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설치·운영 비용을 줄이거나 주변 주민과 화합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테스트 베드’ 역할을 지속 수행하며 국내 다른 해상 풍력 단지의 롤 모델이 되겠다는 게 한국해상풍력의 포부다.

해상 변전소·석션 버킷 공법 도입

바다에 800m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터빈 사이에는 흰색 변전소가 우뚝 서 있었다. 국내 최초로 설치된 해상 변전소다. 20기의 터빈에서 모인 전압은 이 변전소를 거쳐 해저 케이블망을 타고 육지로 넘어온다. 이때 갓 생산된 전력의 전압을 높여 가느다란 케이블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변전소의 역할이다.

풍력 발전기는 육지보다는 바다에 있는 게 효율이 더 좋다.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변전소가 발전기 주변에 있으면 전력 누수량도 줄일 수 있다. 이에 한국해상풍력은 발전 공기업의 기술력과 지원을 바탕으로 바다 위에 변전소를 건설했다.

변전소에는 담수화 설비와 오염 유출 방지 설비, 비상 해상탈출 장치 등이 있다. 또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작업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양인선 한국해상풍력 센터장은 “바다라는 특수한 공간에 마련된 시설인 만큼,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터빈 20기 가운데 1기에는 한전이 2016년 자체 개발한 ‘석션 버킷’ 기술이 도입돼 있다. 기존 해상풍력 발전기는 하단에 말뚝을 박아 지반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세워졌다. 이에 따라 암반 굴착과 시멘트액을 주입하는 공정이 필수였다. 공사 과정에서 소음과 부유모래 발생, 시멘트 주입재로 인한 해양오염 위험성이 컸다.

반면 석션 버킷은 한쪽 면만 뚫린 깡통 모양의 대형 강관(버킷)을 바다 밑에 엎어놓은 뒤 펌프를 이용해 강관 안의 물을 빨아내는 공법이다. 이때 발생한 강관 내·외부 수압 차를 이용해 기초시설을 지반에 꽂아 넣게 된다. 굴착 소음이나 진동이 없고 토사 유출 등도 막을 수 있어 환경 오염 위험이 적다. 이 공법을 활용하면 40~45일 정도 걸리는 발전기 설치도 하루 만에 가능하다. 서남해 해상풍력 단지에 설치된 발전기 절반을 석션 버킷으로 교체할 경우 약 1800억원의 비용 절감도 할 수 있다. 한국해상풍력은 향후 이러한 신기술을 활용한 발전기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다.

목표는 주민과 상생하는 풍력단지

당초 고창에선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발전기를 해저면에 박으면 인근 어장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초나 따개비를 비롯한 어패류가 발전기에 달라붙자, 자연스럽게 이를 주식으로 하는 어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발전기가 인공 어초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더 큰 어장이 형성된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해상풍력은 2019년부터 풍력 단지 내 어선 출입을 허용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사전 허가를 받은 지역 어선에 한해 터빈 반경 100m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업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파도가 높지 않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굴과 가리비, 미역, 다시마, 꽃게, 주꾸미 등을 수확하기 위한 어민들의 배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됐다.

한국해상풍력은 공사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환경모니터링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준공 4년째를 맞은 현재 수질은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400㎿ 규모 시범사업 준비 박차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사업은 3단계로 추진되고 있다. 한국해상풍력은 우선 60㎿ 규모의 실증사업을 진행했다. 2단계로는 400㎿ 규모의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약 2조6000억원을 투입해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단계 사업은 전북 부안군 위도 근처에서 추진되는데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서울 지역 약 19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4.3GW 규모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10여기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 신기술 도입과 주민상생형 발전을 추구하는 한국해상풍력의 서남권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에너지 믹스 정책도 순항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해상풍력 관계자는 “국내 풍력발전의 질을 개선하고, 다른 풍력단지에 더 나은 기술을 전파한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공공성을 잃지 않는 운영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창=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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