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금리 장기화 시그널에…비관론만 가득한 코스닥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0. 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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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금리 장기화 시그널에…

추석 연휴로 일주일 만에 문을 연 증시가 파랗게 질렸다. 추석 이후 첫날이자 10월 첫째 거래일인 10월 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2465)보다 59포인트(2.41%) 하락한 2405에 장을 닫았다. 코스피는 최근 한 달 새 7% 가까이 빠졌다. 개미가 주도하며 코스피 대비 상대적으로 선전했던 코스닥은 낙폭이 더 컸다. 전 거래일(841)보다 33포인트(4%) 내린 807에 거래를 마쳤다. 그간 국내 증시는 추석 연휴 전 하락했다가 연휴 이후 상승하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10월 첫날 지수만 놓고 보면 이 같은 ‘징크스’는 2023년만큼은 예외였다.

美 고금리 장기화 전망

전 세계 증시가 ‘패닉 장세’

10월 4일이 ‘검은 수요일’로 물든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다. 글로벌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0월 3일(현지 시간) 연 4.81%를 기록하며 2007년 이후 16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을 내비치며 미국 국채 금리는 연일 급등했다. 지난 9월 27일 4.5%를 넘어선 데 이어 빠른 속도로 4.8%대까지 치솟았다. 통상적으로 채권 금리와 주가는 반대로 움직인다. 미국이 ‘고금리의 장기화’ 시그널을 내보이며 금리는 오르고 주가는 폭락한 것이다.

앞서 연준은 지난 9월 20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했지만, 당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금리를 추가로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연준 내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점도표)에서 연준 위원 19명 가운데 12명이 연내 한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코스닥지수 잡아끈 2차전지

추석 전부터 빠지다 급락

‘검은 수요일’ 이후 특히 코스닥에 비관론이 넘친다. 그간 코스닥을 이끌어온 테마주 열풍이 사라지며 낙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코스닥은 올해 ‘2차전지 → 의료 AI → 로봇’으로 주도주가 옮겨 가며 상승세를 탔다. 2차전지 주도주였던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최근 증시에서 급등한 루닛, 뷰노, 제이엘케이 등 의료 AI 주식이 모두 코스닥 소속이다. 최근 시장을 주도하는 신기술 테마에 속한 성장주는 코스닥이 다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2차전지 소재 외 관련 부품·장비 주식도 코스닥 소속이다. 로봇 대장주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비롯해 뉴로메카 등도 모두 코스닥에서 거래된다.

여기에 초전도체·맥신·양자컴퓨터까지 각종 테마주가 난무하자 코스닥 거래 대금이 급증했다. 코스닥에 단타가 폭증하면서 코스닥 거래 대금이 형인 코스피를 누르고 연일 10조원을 넘는 흐름을 보였다. 코스닥 거래 대금은 지난 4월 17조원대를 돌파했다. 이후 하락세를 보이더니 5~7월 초까지 10조원을 밑돌았다. 하지만 테마주 열풍과 함께 7월 이후 다시 10조원대를 회복했다. 지난해 말 코스닥 거래 대금이 4조8110억원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코스닥 거래량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며 테마주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은 20년 만에 찾아왔고, AI 같은 새로운 기술 사이클도 15년 만”이라며 “큰 산업 변화가 생기고 주도주 역시 산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I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제품 사이클이 나타난다면 그 수혜를 받는 것은 국내 대장주일 수도 있지만 중소형주일 수도 있다”며 코스닥 강세를 점쳤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미국 고금리 장기화라는 대형 악재가 테마주로 불붙었던 코스닥을 냉각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그 바로미터가 2차전지 하락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추석 전부터 슬금슬금 하락세를 보여온 코스닥 시가총액 ‘투톱’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는 10월 4일 7~8%대 하락했다. 엘앤에프 역시 9% 급락했다. 외국인들이 2차전지 종목을 집중적으로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에코프로비엠, 레인보우로보틱스, 엘앤에프, 에코프로 순으로 순매도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제외하면 모두 2차전지 종목에 매도세가 몰렸다. 최근 유럽의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고 중국발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진 데다, 테슬라의 3분기 차량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 다양한 악재가 연휴 뒤 한꺼번에 주가에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장정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8월보다 33% 조정을 받았어도 매수하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며 “실적 전망치 하락에 따른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부담이 있다”며 ‘중립’ 의견을 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첫날 국내 증시가 파랗게 질렸다. 미국 고금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낙폭을 키웠다. (연합뉴스)
양도세 회피 목적 매도 쏟아질 수

개인 투자자 집중 사들인 종목 주의

또한 지금까지 개인 투자자 자금이 코스닥 시장에 집중됐지만 양도소득세 회피 목적으로 매도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올 들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대부분 개인 투자자가 매수 주체였다. ▲에코프로비엠 5840억원 ▲에코프로 680억원 ▲포스코DX 510억원 ▲엘앤에프 8580억원 ▲JYP Ent. 2810억원 ▲레인보우로보틱스 190억원 등이다(10월 4일 기준).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13년 대주주 한도가 50억원이 된 후부터 개인 투자자들은 12월 주식을 순매도했다. 2020년 이후 대주주 한도가 10억원이 된 이상 비슷한 양상을 보일 확률이 높다고 한화투자증권은 설명한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말 개인 순매도는 세금과 당해 주가 등락률에 영향을 받는다”며 “올해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30%에 가깝고 개인 투자자들의 월평균 순매수 규모도 8783억원으로 많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올 연말 개인 투자자들은 세금 회피 목적으로 주식을 매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탈코스닥 러시…
포스코DX·엘앤에프 “코스피 갈래요”
지난 9월 20일 코스닥 시가총액 7위 바이오 기업 HLB가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8월 코스피 이전을 결정한 코스닥 시총 4위 포스코DX와 엘앤에프(시가총액 5위), 그리고 코스피 상장사 셀트리온과 합병을 추진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시총 3위)까지 포함하면 코스닥 시가총액 톱10 기업 중 4곳이 한꺼번에 코스피로 짐을 싸겠다고 선언한 것. 이는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 7%(28조원)에 해당한다.

코스닥에서 몸집을 키운 알짜 기업의 코스피 이전은 해마다 반복된다. 과거 NHN(2008년), 카카오(2017년), 셀트리온(2018년) 등이 코스피로 거처를 옮겼다. 올 들어서는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비에이치·NICE평가정보 등 3곳이 코스피로 무대를 바꿨다. 코스피로 이전을 추진 중인 포스코DX, 엘앤에프, HLB까지 연내에 옮겨 가면 2003년(6건) 이후 연간 최다 이탈 기록이 된다.

우량 기업들이 코스닥을 떠나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미지 개선이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저평가를 뜻하는 이른바 ‘코스닥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은 주가 조작 시도에 취약하다. 게다가 임직원 횡령·배임 사고 등도 잦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의 74%가 코스닥에서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코스닥 기업에는 아예 투자하지 않는 기관 투자자도 있다. 올해 코스닥의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8.6%에 불과하다.

코스피는 경영 성과나 공시·내부 통제 등 상장 심사가 코스닥보다 까다롭다. 그래서 코스피에 진입하면 대외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에 편입되면 대형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자금이 유입된다.

공매도 리스크도 ‘탈코스닥’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현재 공매도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구성 종목에만 허용된다. 코스닥에서는 덩치가 커 공매도 공세를 받지만 코스피로 이전했을 때 시가총액 200위 안에 들지 않는다면 공매도 공세를 피할 수 있다. 코스피 이전을 추진 중인 엘앤에프는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잔액 비율이 7.2%로 코스닥에서 셋째로 높고, HLB도 다섯째(6.7%)나 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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