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글날만 한국방송·문화방송·교육방송인가?

오태규 2023. 10. 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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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방송사의 한글날 일회성 기획, 오히려 한글 경시 풍조 불러올 수도

[오태규 기자]

 577돌 한글날 경축식 방송 장면. 오른쪽 위편에 'KBS' 대신 '한국방송'이라는 한글 회사 이름이 보인다.
ⓒ 한국방송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이 우리 문화의 자랑인 한글을 창제한 지 577돌이 되는 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보니, 다른 날과 달리 오른쪽 위편에 'KBS' 'MBC' 'EBS'라는 영어 이름 대신 '한국방송', '문화방송', '교육방송'이라는 한글 회사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오늘이 한글날이라는 걸 눈치챘습니다.

이런 일은 MBC가 2018년 처음으로 그해 한글날에 문화방송이란 이름을 쓴 이래, KBS와 EBS도 따라가면서 유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한글날 하루만 하고 마는 '일회성 보여주기' 기획 상품이라는 점입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교육방송은 한글날을 기리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런 기획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 방송사를 빼고는 어느 방송도 이런 일을 하지 않으니 '역시 공영방송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날 하루만 한글 이름을 쓰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글날에만 한글 회사 이름을 내보내는 것으로, 한글날을 기리기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글날을 위한 일회용 기획은 처음엔 시청자와 미디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자꾸 반복하면 실증이 나는 것처럼, 이런 일회성 기획은 이제 신선미를 잃었습니다. 오히려 한글날만 하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한글날을 제외하고는 한글을 중시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 만드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좀 가혹한 평가인지 모르지만, 세 방송사의 한글날 일회성 기획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애초 한글날과 한글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기획을 했다면, 한글날 하루만 한글 회사 이름을 내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한글은 하루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 년 365일 똑같이 중요합니다. 애초 한글의 중요성을 생각해 만든 기획의 취지를 살려, 앞으로는 이런 일을 365일 연중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날 일회성 행사만으로는 부족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한글 단체 등이 준비한 화환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초등학교 시절 배운 다음과 같은 동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청년이 언덕에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언덕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 청년은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넘어지면 3년을 사니까 계속 넘어지면 3년씩 생명이 연장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그 언덕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오래오래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세 방송사도 그 청년처럼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침 지역 방송사인 '광주문화방송'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광주문화방송'은 지난해 10월 1일부터 '광주MBC' 대신 '광주문화방송'이란 회사 이름을 1년 이상 내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10월부터는 한글 이름을 훈민정음체로 가다듬어 쓰고 있습니다.

매년 한글날을 즈음해 우리말 지킴이와 우리말 헤살꾼(훼방꾼)을 뽑아 발표하는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공동대표 이대로 등)이 이런 점을 높이 사, '광주문화방송'(사장 김낙곤)을 '2023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선정했습니다.

사실 방송사의 국적 불명 영어 이름을 한글로 쓰자고 맨 먼저 주장한 사람은, 1976년 최초의 순 한글 가로쓰기 잡지인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1936~1997)씨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영어 약자로 쓰는 방송사 이름은, 미국의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나 ABC(American Broadcasting Company)나 일본의 NHK(일본방송협회, Nippon Hoso Kyokai)의 영어 이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엉터리라면서 한글 이름 사용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의 문제 제기를 '광주문화방송'이 46년 만인 지난해부터 전면 수용한 것입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교육방송도 한글날 하루만 일회성 보여주기로 하는 한글 이름 사용을, 내년부터는 연중행사로 확대하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의 씨앗, 한류의 씨앗인 한글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려서 좋은 열매를 맺는 데 힘을 보태주길 바랍니다.

한글날 일회성 행사, 그것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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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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