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인질극, 사태 장기화 우려…이스라엘 '피의 보복' 수위에 달려"
친이란 성향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8일(현지시간)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급파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날 하마스와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겨냥해 전쟁을 공식 선포하면서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 사태가 주변국으로 확대될 위기에 처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향후 움직임과 한국에 미칠 전망을 외신 분석과 국내 전문가들의 예상 등으로 정리했다.
①미국·이란 대리전으로 확대될까
미국의 항모 전단 파견을 놓고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이란과 미국의 대리 전쟁 양상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동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중앙일보에 “미국의 항모 파견은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아닌 배후의 이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맞다”면서도 “오히려 확전을 막고 상황 관리를 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비판을 의식하는 등 자국민을 겨냥한 것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쟁의 향후 전망과 관련해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이 워낙 압도적 화력을 갖고 있어 하마스와의 군사적 충돌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지만, 하마스가 민간인 인질을 잡고 있는 부분이 상황을 오래 끌고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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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이스라엘 ‘피의 보복’ 수위가 관건
역대 가장 '우클릭'한 베냐민 네타냐후 연립 정부는 중요한 분기점에 섰다. 극우파가 목소리를 얻으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더욱 강경해 질 수 있다. 이번 기회를 군·모사드 내 반(反)네타냐후 세력을 제거 기회로 여길 수도 있다. 반면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 등 온건 성향의 야당 지도자들은 네타냐후를 향해 “비상 정부 구성에 동참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만약 네타냐후 총리가 이 제안을 수락하면 극단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수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중동센터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팔레스타인 대중들의 지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무장 정파인 하마스로 옮겨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극우로 치달아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공존 해법)’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양극단이 공존하는 사태”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응 수위에 따라 중동 아랍 국가들은 물론 점차 국제사회 여론도 달라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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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손 묶인 사우디의 행보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진행 중이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을 종합하면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국왕과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를 실리적으로 접근한다. 이와 관련 성 연구위원은“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가 갖는 입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사우디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공개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 “당분간은 시간을 두고 이스라엘에 접근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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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개입설 공식 부인한 이란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이란이 하마스의 기습 작전을 사전에 승인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반면 이란은 유엔 대표부를 통해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만 대응에 개입하진 않는다”며 관여설을 공식 부인했다. 실제 이란이 이번 일을 배후에서 지휘했다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전쟁을 불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가시적으로 얻을 게 없는 상황에서 이란이 먼저 계획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란은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의 국내 방어선이 뚫렸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⑤스텝 꼬인 바이든의 대중동 외교
국내 전문가들도 ‘일시 멈춤’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다만 성 연구위원은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완전히 물건너갔다는 해석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빈살만은 사우디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시간의 문제일 뿐 다시 추진하려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 교수는 “팔레스타인 관련 해법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진전 여부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 구상은 훨씬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⑥美 ‘두개 전선’ 지켜보는 북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고 있던 미국의 외교·안보 전력은 중동으로 분산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한반도 문제는 더욱 후순위로 밀린다는 의미도 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국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면서 “그간 중동 국가들과 등거리 외교를 비교적 잘 해온 한국 입장에서 중동 정세가 미국·이스라엘 편과 아랍편으로 나뉘면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은 한국 대통령의 현지 방문을 오랫동안 공들여온 만큼,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시기를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대사 역시 “북한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두 개의 전선’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대응 패턴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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