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의지 없다" 2년 속였다…이스라엘 허 찌른 하마스 교란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막후에는 2년간 치밀하게 설계한 교란 작전이 있었다는 이스라엘 안보 당국자의 내부 목소리가 나왔다. 하마스가 대규모 군사작전을 철저히 숨기고,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계 등 경제가 중요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이스라엘이 방심한 틈을 타 기습 공격을 강행했다는 설명이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청한 이스라엘 안보 소식통 세 명의 말을 인용해 "하마스가 전례 없는 정보전으로 이스라엘에 싸울 의지가 없다는 인상을 줬고, 거기에 이스라엘이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 등 '당근'을 주며 전쟁에 지친 하마스 세력을 평화롭게 무력화했고, 이 같은 정책이 주효했다고 여겼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몇 년간 가자지구 평화를 위해 이 일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이나 서안 지구에서 건설·농업·서비스 업종에서 일할 경우, 가자지구 임금의 10배에 달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 허가를 내주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안보를 이유로 차단했던 에레즈 통행로를 다시 개방하기도 했다. 이 통행로는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약 1만8000명 가량이 이용하는 곳이다.
가자지구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이슬람 무장 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가 이스라엘에 대해 공격을 감행해도 하마스는 일단 자제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 같은 교란 작전에 안심할 때 하마스가 허를 찌른 셈이다. 익명의 이스라엘 안보 소식통은 로이터에 "하마스는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이스라엘을 오도하기 위해 전례 없는 정보 전술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며 "대규모 군사 작전을 뒤로 준비하는 동안 겉으로는 이스라엘과 싸우거나 대치할 의사가 없다는 인상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대놓고 이뤄진 하마스의 군사훈련도 '보여주기식'이라 치부한 이스라엘 안보 당국의 패착도 있다. 하마스 내부 사정에 정통한 다른 이스라엘 당국자는 로이터에 "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모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해 군사 상륙 작전을 연습하고 습격 훈련을 감행했다"며 "훈련 동영상까지 만들어 공개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것이 ''보여주기'일 뿐 이스라엘을 향한 군사 도발로 이어질지 염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현재 예루살렘 전략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야코프 아미드로르는 "이스라엘 정보 시스템의 엄청난 실패"라며 "이 같은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는 1987년 12월 창설된 반(反) 이스라엘 무장단체이다. 하마스 군사 조직인 이제딘 알 카삼 여단 주도로 이스라엘에 대항한 무장 투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시오니즘을 지향하는 극우파와 손잡고 재집권에 성공했고,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에 강제 합병시키겠다 밝히자 하마스도 맞서고 있다. 네타냐후의 극우 정책 기조가 통제 불가능하자 불안함이 가중된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강대강' 공격을 재개하는 모양새다.
지난 7일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배후에는 현재 알 카삼 여단 최고 지도자인 모함마드 데이프(58)가 있다는 게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의 설명이다. 지난 2011년 길라드 샬리트 이스라엘 병사 포로 맞교환에 관여한 한 이스라엘 외교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프는 팔레스타인 세력 간의 내부 경쟁에 관심이 없는 조용하고 강렬한 남자"라며 "그는 이스라엘-아랍 분쟁의 본질을 바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데에만 오롯이 전념한다"고 전했다.
데이프는 지난 2014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 때 아내와 당시 생후 7개월 아들, 딸을 잃었다. 당시 가족을 잃은 뒤 "지옥의 문을 열고 이스라엘인들을 보내버리겠다" 맹세하기도 했다. 데이프는 이스라엘군이 여러 차례 암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았다. 한쪽 눈은 실명하고, 다리를 심하게 다쳐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데이프는 로켓과 무인기 공격, 자살 테러 등 하마스의 여러 군사 활동을 이끌고 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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