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자에 주던 월급 갑자기 중지…法 "부당 노동행위"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그동안 급여의 50%를 지급해왔으나,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금은 위법행위로 급여가 지급되지 않음을 통보합니다.’
한 지역농협에 다니는 주모 씨는 전국노조 지역본부장으로 파견 간 뒤 8년째 회사로부터 월급 절반을 받고 있었다. 갑작스런 급여지급 중지 통보를 받은 건 2020년 7월의 일이다. 노조가 해당년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A농협은 교섭요구에 불응하면서, 이제부터 주 씨에게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 성수제)는 지난달 A농협의 이런 행동이 모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A농협은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 심판과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왔으나 이번엔 상소를 포기해 지난 5일 판결이 확정됐다.
A농협은 2010년 개정된 노동조합법을 근거로 2020년에 급여지급을 중단했다. 소송 과정에서 밝힌 회사의 사정은 이렇다. 당시 지방노동청에 문의해 ‘바뀐 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으나, 2010년 6월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뀌며 공문이 누락됐다고 한다. 이후 10년이 지난 2020년 6월에야 회신 공문을 발견했고, 뒤늦게 급여 지급을 중단한 것은 그간의 법 위반을 시정한 것 뿐이라는 주장이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 금지는 2010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노조 전임자일 뿐”…“노조전임자 겸 근로시간 면제자”
법원은 A농협이 주 씨에게 급여를 줘 온 것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갑작스레 지급을 끊은 것이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 한 행동이라 봤다. 1·2심 모두 주씨가 ‘노조 전임자’일 뿐 아니라 ‘근로시간 면제자’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받아서는 안 되지만, ‘근로시간 면제자’는 고시된 한도 내에서 임금의 손실 없이 노조 업무를 할 수 있다.
주씨와 A농협은 2010년 노조법 개정 이후에도 ‘전임자에게 연간 1000시간의 근로시간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담긴 별도 협약을 2011년부터 거듭 체결했다. A농협은 여기에도 ‘전임자’란 용어를 썼고 주씨를 노조 전임자로만 대우해왔다고 강조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전임자’라는 용어가 사용됐더라도 ‘전임자에 대해 연간 1000시간 근로시간을 면제한다’고 규정한 걸 보면 여기서 ‘전임자’의 실질적 의미는 ‘근로시간 면제자’”라고 했다. 서울고법은 “A농협은 2011년 별도 협약 이후 2020년 7월까지 주씨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했으므로, 2010년 노동조합법 개정 이후 주씨를 근로시간 면제자로 지정하는 데 대해 A농협과 노조 사이에 적어도 묵시적 합의가 성립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法 “노조 활동 약화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
A농협은 ‘근로시간 면제자면 면제된 시간 외에는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해야 했는데 주씨는 그러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주씨는 전국금융노조 지역본부장으로 A농협을 포함한 17개 단위 농협과 15차례 단체교섭을 하는 등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으로부터 파견된 활동을 했는데, 이는 고용노동부 매뉴얼 상 근로시간 면제자의 대상 업무로 인정되는 활동”이라며 “파견 활동이 반드시 A농협에 출·퇴근하며 이뤄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한 재판부는 “근로시간 면제자 겸 노조 전임자로서 노조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주씨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 적용과 급여 지급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중지한 이상, 노조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의 의사가 추단된다”며 이를 ‘노조 활동에 대한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이자 ‘노조 활동을 약화사키기 위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라 결론 내렸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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