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지원금 늘면 뭐하나…"2주 400만원" 조리원 요금 뛰는 까닭

김경희 2023. 10. 9. 16: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내년 초 셋째 출산을 앞둔 김모씨(40)는 최근 산후조리원을 알아보다가 늘어난 비용 부담에 깜짝 놀랐다. 서울의 한 준프리미엄급 산후조리원도 사실상 필수나 마찬가지인 산후 마사지 서비스 등을 포함하면 2주 기준 비용이 400만원을 훌쩍 넘겨서다. 서울 강남의 한 업체는 내년부터 방 등급별로 50만~100만원을 인상한다고 예고했다. 인천의 한 산후조리원도 시설이나 서비스는 그대로지만 내년부터 가격을 30만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내년부터 정부의 출산 지원금 등이 늘어난다지만 출산비용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산 여파로 산후조리원이 줄어 산모의 선택 폭은 줄어드는 반면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산후조리원 수는 475곳으로 2017년(598곳)에 비해 20.5% 감소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는 6곳이 더 줄었다. 한편 산후조리원 전국 평균 이용요금(2주 일반실 이용 기준)은 2017년 241만원에서 2022년 307만원으로 27.4% 상승했다. 서울의 경우 2017년 317만원에서 지난해 410만원으로 100만원 가까이 올랐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 산후조리원’의 일반실 기준 2주 평균 이용요금은 약 170만원이지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 6월 기준으로 서울 송파구 1곳 등 전국 18곳(전체 469곳의 3.8%)에 불과하다.

산후조리원 이용률은 계속 늘고 있다. 2021년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의 산후조리 실태조사 결과 2020년 출산한 산모(3127명)의 81.2%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75.1%에 비해 6.1%포인트 증가했다. 그런가 하면 산후조리원 이용에 드는 평균 비용은 243만1000원으로 3년 전(220만7000원)에 비해 9.2% 늘었다. 산후조리원 이용과 관련해 가장 필요한 정부 정책으로 꼽힌 건 역시 ‘비용 지원(51.3%)’이었다.

차준홍 기자

산후조리원들은 인건비 등 물가 상승을 가장 큰 요금 인상 요인으로 내세운다. 인천의 한 산후조리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가격을 동결해왔지만, 그 사이 인건비 등은 계속 올랐다”며 “이마저도 한 번에 다 올릴 수 없으니 조금씩 인상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생아가 줄어들면서 고객 1명당 수익성을 높이려는 경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대신 돈은 더 많이 쓰게 되는 심리를 이용해 가격을 올린다는 의미다.

정부의 산후조리비용 지원이 본래 의도와 달리 산후조리원 요금 인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9월부터 소득과 관계없이 아이 1명당 100만원의 산후조리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다. 조리원 이용을 원하지 않는 가정을 배려해 조리원을 제외한 산후건강관리에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마사지 사업을 따로 등록해 운영하고 있다면 마사지 비용은 바우처로 결제 가능하다. 특정 목적의 바우처보다는 현금 지급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분만을 하는 추세도 비용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출산력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출산한 여성(19~49세) 811명의 50.4%는 자연분만을, 나머지 49.7%는 제왕절개분만을 택했다. 제왕절개분만율은 2015년 39.1%, 2018년 42.3%에서 계속 늘고 있다.

2016년부터 제왕절개 수술시 본인 부담비율이 20%에서 5%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자연분만보다는 비용부담이 크다. 의원급 산부인과의 경우 자연분만은 50만원대, 제왕절개는 100만원 이상으로 통상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자연분만보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마취제 등 비급여 항목이 더 많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공공산후조리원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해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35세 이상 고령 임신부 증가ㆍ제왕절개 선호 문화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의료진이 제왕절개를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자연분만으로 태아가 잘못된 경우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의 책임을 더 크게 묻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며 “고령 임신과 의사의 방어 진료로 제왕절개 분만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턱없이 낮은 분만 의료수가도 제왕절개분만율을 높이는 요인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의원급 산부인과의 자연분만 수가는 55만원, 제왕절개 수가는 48만원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각각 960만원, 800만원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제왕절개는 날짜 잡고 1시간가량 수술하면 되는데 자연분만은 진통이 길어질 경우 의료진의 대기 시간도 길어진다”며 “평균적으로 초산모는 9시간, 경산모(둘째 이상 출산 산모)는 6시간 진통을 하는데 분만 전 과정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사명감으로 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분만수가를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분만병원들은 적자난에 다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