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플란테 "'레드 룸스', 인간성과 공감 상실해가는 현 시대 반영" [28th BIFF]
파스칼 플란테(Pascal Plante) 감독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활동하는 감독으로 첫 장편 '페이크 타투스'가 베를린 영화제, 두 번째 장편 '나디아, 나빌레라'는 칸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레드 룸스'(Red Rooms)는 세 번째 장편이며,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이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됐다.
레드룸은 불법 행위가 숨어 있는 다크 웹 안의 위험한 온라인 공간을 뜻한다. 그곳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강간, 고문, 살인 등을 라이브 스트리밍 비디오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알려졌다. 레드룸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레드 룸스'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화는, 다크 웹의 어두운 실상이 배경이다. 연쇄살인범 슈발리에는 13세~16세까지 소녀 세 명을 죽이고 라이브 스트리밍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영화는 슈발리에의 재판을 시작으로 시작하는 가운데 사건 자체보다는, 슈발리에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성 캘리언(줄리엣 가리피 분) 내면의 여정에 관심을 보인다. 파스칼 플란테 감독은 범죄자를 추종하는 현상과 레드룸 소재를 결합해 장르물로 만들어냈다. 영화는 끔찍한 살인 장면이 단 한 장면도 나오지는 않지만 법정 설명과 증거 사진, 살인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접한 인물들의 반응으로 관객을 '레드룸스'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는 스크린 앞에서 이미지에 집착하느라 점점 더 인간성과 공감을 상실해가고 있어요. 팬데믹 동안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흥미롭게 봤던 현상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들을 추종하는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악마, 살인자에게 집착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사람들의 뇌와 감정으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봤어요.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관객들의 피부 깊숙이 파고 들어서 배우의 의도, 동기가 무엇일지 파고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식 속에서 계속 남는 영화이길 바라요. 왜냐하면 영화는 그런 걸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캘리언은 매혹적인 캐릭터로, 직업도 모델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온라인에서는 '샬롯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으로 전혀 다른 인격체로 살아가는 인물이다.캘리언과 함께 슈발리에의 팬인 클레망틴(로리 바빈 분)은 평범한 외모에 감정 역시 모두 드러낸다. TV 토크쇼에서 슈발리에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당장 전화할 만큼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두 사람은 슈발리에 재판을 통해 교류하며 가까워졌으며 슈발리에가 범인임을 확신하는 순간 다른 반응을 보인다.
"캘리언은 수수께끼 같은 여자였으면 했죠. 반면 클레망틴은 친근한 인물로 그렸습니다. 극명한 개성과 성격의 대비를 보여주려고 했죠. 캘리언은 우리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인간상이 아닐까 싶어요. 현실에서는 지극히 외로워하지만 온라인으로 강렬한 인격체로 살아가고 있죠. 온라인을 많이 활용하는 사람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델이란 직업을 통해 다양한 캘리언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델이라는 건 자기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의 자아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캘리언은 아주 눈에 띄는 사람이지만 존재감이 없어 보여요. 자기를 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유 의지로 선택하죠."
캘리언은 마치 록스타, 마녀 같은 이미지로 영화를 활보한다. 뛰어난 지능으로 게임으로 손 쉽게 돈을 벌고, 스쿼시 실력도 뛰어나다. 눈에 띄는 외모로 모델 활동을 지속하는데, 외적으로 캘리언은 지금 세대 모두가 동경하는 비주얼 이미지로 점철돼 있다. 파스칼 플란테 감독은 줄리엣 가리피 덕분에 캘리언의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캘리언이 스쿼시, 포커, 해킹 등에 능한 인물이라 줄리엣이 많은 준비를 해야 했어요. 스쿼시는 네모난 공간 안에서 공이 벽면을 맞으면서 돌아오는 게 수학적이라, 배우가 스쿼시를 배우면서 자신의 배역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줄리엣에게 중요한 역을 맡긴 게 처음인데 열심히 노력해서 잘 준비해와 고마웠습니다."
캘리언이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이름 '샬롯의 여인'은 마법의 거울로만 사물을 볼 수 있는 운명이지만, 랜슬롯을 직접 보면서 죽은 아서왕의 전설을 차용했다.
"'샬롯의 여인'이란 이름은 캘리언이 귀신, 유령 같은 아우라를 그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컴퓨터 스크린, 유리, 창문으로 반사되는 모습의 모티프가 됐습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한 아우라를 잘 보여줄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주 배경이 되는 법정은, 우리가 지금까지 접했던 풍경과 다르다. 법정보다는 병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몬트리올의 법정은 '레드 룸스'의 차가운 이미지를 한 껏 극대화한다.
"이 작품을 준비하며 법정 드라마를 많이 봤습니다. 재판정이 아주 따뜻하고 천장이 높고 나무로 된 멋진 건물로 묘사가 많이 돼 있었지만, 몬트리올 법원은 친근한 비주얼은 아닙니다. 청중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도 10석 정도 밖에 없죠. 좌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캘리언이 밤샘을 하며 들어가야 했던 거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요. 법원 자체는 실제 건물인데 법정은 세트장이었어요. 베타적이고 무서운, 최대한 불안정한 느낌을 전하고 싶어서 법정을 하얀색을 중심으로 설정했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캘리언이 희생자의 모습처럼 파란색 콘텍트 렌즈를 사용하고 똑같은 교복을 입어 법정에서 쫓겨나는 장면으로, 이 행위를 통해 마침내 슈발리에와 눈을 마주치며 관심을 얻는다.
"캘리언이 희생자 분장을 해 마치 희생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해서 살인자와 볼 수 있도록 했던 장면은, 주인공이 판타지에 집착하는 인물로서 성격상 자신의 죽은 것 같은 상태를 되살리는 행위라고 봤어요. 마치 범지 점프를 하며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것처럼요."
극 후반부로 갈 수록 캘리언의 행동은 관객의 혼란을 유도한다. 많은 금액을 지불해, 레드룸에서 찾지 못했던 세 번째 희생자의 비디오를 손에 넣는다. 이후 세 번째 희생자 집에 몰래 침입해 끔찍한 비디오를 그의 부모에게 전달한다. 이 비디오의 발견으로 슈발리에는 유죄가 확정된다.
"이런 영화들은 보통 미스터리하고 메타포를 관객들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요. 캘리언은 다크 판타지에 집착하는 인물인데, 그걸 자기가 어떤 면에서는 즐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희생자 가족을 만나고 자신과 전혀 다른 인간적인 클레망틴과 만나며 로봇 같은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의 극단적인 폭력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깨달을 수 있고요. 사람에 대한 공감을 배워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살인자에 집착했지만 이후에는 희생자에게 집착하게 됐던 것 같아요."
2020년 '나디아, 나빌레로'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팬데믹으로 올 수 없었던 파스칼 플란테는 올해 부산에 오게 돼 자신과 영화제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3년 전엔 줌을 통해 관객과 만나 아쉬웠는데 이번 영화로 실제 부산을 오게 돼 기뻐요. 역시 직접 오는 게 훨씬 더 좋네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까지 만나 완벽해졌어요. 그리고 제가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GV에 참여했는데 영화제가 감독들과 관객 사이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또 다시 느낍니다. 다시 한 번 씨네필로 돌아가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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