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시너지냐, 허울만 인수냐…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쟁점은
"슬롯 이관·화물사업 매각" 등 거론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 위해 정부 추진
대한항공은 이달 중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해 경쟁 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 조치안을 낼 예정이다. 인수를 위해서는 필수 신고국 14곳의 승인이 필요한데 EU와 미국, 일본이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 EU가 그간 기업결합 과정에서 깐깐한 기준을 내세웠던 터라 이번 결정은 인수 과정에서 ‘마지막 고비’로 꼽힌다.
앞서 EU 집행위는 지난 8월 초 결정을 내리기로 했었는데 이를 미뤄둔 상태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공항 슬롯(이착륙 횟수) 일부를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한편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화물사업부를 매각하는 방안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유럽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라 화물사업 독점을 우려하는데, 이를 덜어내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이번 인수를 둘러싸고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 건 국내 대형항공사(FSC) 간 첫 합병인 데다, 공식절차가 시작된 후 3년가량 지난 상황에서도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이달 시정안을 낸다면 EU에서 한두달가량 심사를 거쳐 올 연말이나 내년 초께 결과를 낼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본다. EU 고비만 넘긴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논의가 진전, 내년 상반기 중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요 사안별로 어떤 부분이 쟁점인지 살펴봤다.
전례 없는 빅딜, 왜 추진됐나
경영 사정이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을 사겠다고 나선 곳은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휘청이면서 발을 뺐다. 같은 해 11월 산업은행은 "항공운송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방안을 내놨다. 앞서 기획재정부장관·금융위 부위원장 등 고위 관리가 참여하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통합방안을 확정했다.
경영 정상화가 시급했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분쟁이 불거졌던 대한항공 둘 다 최적의 시나리오였다. 회사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던 정부로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산은은 당시 통합추진 배경에 대해 "글로벌 항공산업 경쟁이 심화하고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 구조재편 등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노력 없이는 코로나가 끝나도 국적항공사의 경영 정상화가 불확실하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인구가 1억명이 넘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 나라에 국적항공사 하나를 두는 체제로 재편된 점, 여객·화물 운송 실적을 기준으로 19위(대한항공), 29위(아시아나) 수준인데 단순 합산 시 7위권으로 오르는 점도 통합 근거로 들었다. 국적항공사가 양분돼 인천공항이 허브공항으로서의 네트워크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도 통합 명분으로 작용했다.
아시아나 독자생존, 가능할까
코로나19로 국내 항공사는 화물사업에서 예상보다 많은 수익을 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화물사업이 수익을 냈지만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에 따른 ‘반짝’ 호황에 따른 반사이익 측면이 컸다. 항공화물 수요는 급증했는데 여객기 화물칸(벨리)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전 세계에서 화물 대란을 겪었다.
엔데믹으로 이러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일각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 근거로 화물사업을 거론하나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는 뜻이다. 엔데믹 후 공급물량이 늘어난 데다 화물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곳이 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실적은 다시 평시 수준으로 돌아왔다. 막대한 차입에 따른 부채비율 악화로 재무구조 개선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 상반기 기준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1741%다. 이자 비용 때문에 영업이익을 내도 순손실이 난다.
이번 인수가 또다시 무산된다면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일자리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거론하는 제3자 매각은 실현 가능성이 작고 성사되고 구조조정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 항공산업 네트워크가 망가지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환승 수요를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물 떼고 슬롯 반납, 문제없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나라의 경쟁당국은 인수 후 경쟁이 줄어드는 점을 지적했다. 대한항공이 인수 후 아시아나의 화물사업을 매각하는 방안이나 주요 슬롯을 넘기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추진 중인 사안이다.
화물사업은 우리나라와 해외 경쟁당국의 인식이 조금 다르다. 앞서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항공사가 통합해도 화물사업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외국 항공사나 화물전용 항공사 등 다양한 경쟁사가 있고 슬롯 등 제약이 적어 신규 진입이 쉽다"며 "모든 노선에서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항공화물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 반도체다. 지난해 공항을 통한 전체 수출액이 2292억달러 정도인데 이 가운데 반도체가 1276억달러로 절반이 넘는다. 반도체를 단순히 교역 품목 가운데 하나가 아닌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터라, 유럽에서도 혹시 모를 공급망 차질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공항공사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2019년 기준 전체 화물 물량에서 대한항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37%, 아시아나항공이 21% 정도다. 저비용항공사(LCC)를 포함한 우리나라 항공사가 총 65%, 외국 항공사가 35% 정도다. 화물실적을 기준으로 외국 항공사 상위 10곳 가운데 유럽에 거점을 둔 곳은 2곳뿐이다. 이마저도 러시아(에어브리지화물항공)·튀르키예(터키항공)여서 EU에 적을 둔 항공사는 없는 셈이다.
통합 후 슬롯을 넘기거나 화물사업을 매각하는 방안에 대해 국부유출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으나 이는 기우에 가깝다. 수요가 많은 유럽과 미주 여객노선이나 아시아나 화물사업은 국내 LCC를 대상으로 넘기거나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LCC로서는 안정적인 장거리 노선이나 화물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갖게 돼 우리나라 전체 항공산업 전체적으로 보면 균형 잡힌 성장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럽 노선의 경우 슬롯을 반납해도 소비자 편익이 크게 달라지는 게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U 경쟁당국은 시정조치 대상 노선으로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노선을 들었다. 스페인은 항공 자유화 노선으로 언제든 증편이 가능하며 독일은 아직 쓰지 않은 운수권이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편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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