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군 부대 내 독신자 숙소 TV 수상기도 수신료 면제"
군 부내 내 외래자 숙소나 독신자 숙소에 있는 TV 수상기도 수신료가 면제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관련법상 사용 목적과 상관 없이 '군 영내 소재 수상기'에 대해서는 수신료가 면제되도록 규정돼 있다면, 법문 그대로 해석해야지 확대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또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처분도 사전 통지나 의견청취 등 행정절차법상 절차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위법하다는 점을 대법원이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밝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대한민국(정부)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수신료부과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방송법에 따라 한국방송공사(KBS)로부터 텔레비전방송수신료 징수 업무를 위탁받은 한전은 2020년 대구에 있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영내 외래자·독신자 숙소에 다수의 TV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3개월 치 수신료를 부과했다.
한전은 전기사용고객에 대해 매월 발생하는 전기요금고지서에 한개의 수상기 당 2500원의 수신료를 포함해 함께 징수하고, 그에 따라 수신료 징수금액 중 일정비율의 수수료를 받아오고 있었다.
이후 KBS는 계속해서 미납분 납입을 요청했다. KBS와 비행단의 2022년 1월 합동 조사 결과 숙소에 비치된 TV는 총 769대였는데 미납분을 따져보면 KBS에 수천만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미납 독촉의 근거가 되는 수신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2021년 2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2가지가 쟁점이 됐다. 첫 번째는 군 부내 내 외래자 숙소나 독신자 숙소에 있는 TV 수상기가 수신료 부과 대상인지 여부였고, 두 번째는 행정처분의 절차를 정한 행정절차법이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처분에도 일반 국민에 대한 경우와 똑같이 적용돼,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행정처분은 위법하다고 볼 것인지였다.
한전이 수신료를 부과하면서 사전에 처분의 원인이 되는 사실과 법령상 근거에 관해 미리 통지하지 않았고, 처분서에도 처분의 근거를 기재하지 않아 어떠한 기초사실과 법적 근거를 기준으로 TV 수신료를 산출했는지 알 수 없게 만든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 정부 측 주장이었다.
재판에서 정부는 방송법과 그 시행령에서 '군 영내에 갖추고 있는 수상기'에 대해서는 수상기 등록을 면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한전의 수신료 부과 처분은 등록이 면제되는 수상기에 대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전과 피고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한 KBS는 '공용 또는 공공용'의 목적으로 설치된 수상기에 대해서만 수신료를 면제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군부대의 관사와 독신자숙소는 부대별로 영내와 영외에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데 단지 그 위치에 따라 수신료 부과에 차등을 둘 경우 형평성 시비가 붙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시행령의 '군 영내에 갖추고 있는 수상기'는 규정된 문언의 의미에 따라 장소적으로 군 영내에 있는 수상기로 해석해야 한다"라며 "참가인(KBS) 주장과 같이 '군 영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군의 임무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수상기'만이 등록의무가 면제된다고 봐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 같은 해석은 법령상 '영내'의 의미에다가 '군의 임무수행과 직접적 관련성'이라는 다의적이고 불명확한 불확정 개념을 추가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령의 문언을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시행령은 등록이 면제되는 수상기를 수상기가 위치한 장소만을 요건으로 하는 경우와 장소 외에 그 용도까지 함께 그 요건으로 하는 경우를 구분해 규율하고 있다"라며 "따라서 '군 영내’에 있는 수상기'는 그 사용 목적과는 관계없이 등록의무가 면제되는 수상기로서 이에 대해서는 수신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군 영내'의 의미를 정부 측 주장과 같이 사전적 의미로 해석할 경우 군의 기본적인 업무수행과 관련이 없는 시설까지 영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일률적으로 수신료를 면제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초래돼 입법취지에 반한다는 한전 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군 영내에 위치한 시설이라 해도 상업시설과 관사에 보유하고 있는 수상기의 경우에는 그 소유자 내지 소지자가 민간인이므로 이는 군이 소지하고 있는 수상기라 볼 수 없고, 실제 상업시설과 관사에 위치한 수상기의 경우 소유자 내지 소지자가 수신료를 납부하고 있는바,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설사 수상기 등록이 면제되는 수상기를 군의 업무수행과 관련이 있는 시설 내에 위치한 수상기로 제한한다고 해도 원고 비행단은 위급 상황 발생시 출근 및 대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 및 군사기밀 등의 정보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내에 독신자 및 외래자 숙소를 배치시킨 것이므로, 위 시설은 군의 업무수행을 위한 시설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쟁점과 관련해 한전과 KBS는 "국가인 원고에 대해서는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이 사건에서 행정절차법의 위반 여부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행정절차법의 입법 취지와 이 사건과 같이 국가가 처분의 상대방이 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고, 처분 절차의 적법성은 그 상대방을 불문하고 준수돼야 하는 점, 처분의 상대방이 국가인 경우 행정절차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가인 원고에 대해서도 행정절차법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두 가지 쟁점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동안 대법원은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때 행정철자법상 절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위법한 처분이라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상대가 국가인 경우에도 똑같은 법리가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행정절차법 제2조 4호에 의하면, '당사자 등'이란 행정청의 처분에 대해 직접 그 상대가 되는 당사자와 행정청이 직권 또는 신청에 의해 행정절차에 참여하게 한 이해관계인을 의미하는데, 같은 법 제9조에서는 자연인, 법인, 법인 아닌 사단 또는 재단 외에 '다른 법령등에 따라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 역시 '당사자 등'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국가를 '당사자 등'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행정절차법 제3조 2항에서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항을 열거하고 있는데, '국가를 상대로 하는 행정행위'는 그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행정절차법의 규정과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행정절차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해보면, 행정기관의 처분에 의해 불이익을 입게 되는 국가를 일반 국민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라며 "따라서 국가에 대한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서도 앞서 본 사전 통지, 의견청취, 이유 제시와 관련한 행정절차법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국가에 대한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행정절차법상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 처분이 위법하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밝힌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방송법 시행령 제39조에서 등록이 면제되는 수상기를 해석함에 있어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설시했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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