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수놓았던 환희와 아쉬움의 순간들
[양형석 기자]
▲ '안녕, 항저우!' 8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회식에서 디지털 거인 '농차오얼'이 성화 소화에 앞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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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에 개막했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 아시안게임은 오는 2026년 일본 나고야에서 20회 대회를 개최한다. 아시아 스포츠 최강국이자 개최국 중국이 무려 201개의 금메달과 383개의 메달을 쓸어 담는 독주 속에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 27개의 금메달을 차지하며 종합 3위에 올랐던 일본이 5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42개와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를 차지한 한국은 목표로 삼았던 종합 3위를 달성했다. 메달 합계를 기준으로 하면 총 190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188개의 메달을 따낸 일본을 능가했다. 하지만 내심 '무더기 금메달'을 기대했던 태권도와 양궁 컴파운드, 유도, 레슬링 등에서 다소 부진하면서 대회 전 목표로 삼았던 금메달 50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성적과 상관없이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은 큰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남자축구와 야구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남자수영 자유형의 김우민과 여자양궁 리커브의 임시현처럼 새롭게 등장한 스타들도 있었다. 물론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32강 탈락과 이번 대회를 앞두고 찾아온 무릎부상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목에 건 배드민턴 여자단식 안세영의 투혼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처럼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게 기쁘고 아쉬웠던 순간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
▲ 파키스탄에 패배한 한국 남자배구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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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종목이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단체 구기 종목에서도 중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물론 축구처럼 중동이나 중앙 아시아의 전력이 강한 종목도 있고 야구처럼 중국보다 대만의 전력이 강한 종목도 있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단체 구기종목에서 '아시아 3강'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단체구기종목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이란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남자배구는 이번 대회에서 이란도 일본도 중국도 아닌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패하며 개막식이 열리기도 전에 7~12위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남자배구는 순위결정전에서 7위에 그치며 61년 만에 메달을 따지 못했다. 여자배구 역시 예선에서 베트남, 8강 리그에서 중국에게 패하면서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17년 만에 노메달로 대회를 마감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남녀핸드볼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남자핸드볼은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핸드볼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처음으로 4강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 동메달을 제외하면 지난 8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7개를 쓸어 담았던 여자핸드볼 역시 결승에서 일본에게 19-29로 완패하며 대회 3연패가 좌절됐다. 한국 여자핸드볼이 일본에게 패한 것은 2012년 한일 정기전 이후 11년 만이다.
여자농구가 북한과의 두 차례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건 가운데 남자농구는 귀화선수 라건아를 비롯해 KBL 스타 선수들로 엔트리를 구성하고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조별리그에서 2진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 패한 한국은 8강에서 중국, 5~8위 결정전에서 이란에게 패하면서 7~8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한국은 순위결정전에서 일본에게 설욕했지만 아시안게임 7위는 역대 아시안게임 최악의 성적이었다.
▲ 금메달 목에 건 자랑스러운 얼굴들 1년 미뤄져 지난달 23일 개막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16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하고 8일 오후 막을 내린다. 사진은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오상욱과 은메달을 차지한 구본길(위 왼쪽부터), 탁구 여자 복식 신유빈-전지희, 태권도 겨루기 남자 58㎏급 장준, 배드민턴 여자 단식 안세영,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 윤지수, 주짓수 남자 77kg급 구본철, 남자 자유형 400m 김우민, 양궁 리커브 여자 개인 임시현이 금메달을 목에 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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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경영 종목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팬들의 관심은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200m에서 2년 연속 메달을 목에 걸었던 황선우에게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황선우가 200m와 계영 800m에서 금메달을 따낼 때 자유형 400m와 800m까지 휩쓸며 한국수영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선수가 있었다. 바로 800m에서 한국기록을 경신하고 400m에서는 2위와 무려 4.45초의 차이를 벌리며 금메달을 차지한 김우민이었다.
지난 2일에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소녀'로 주목 받았던 '삐약이' 신유빈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다. 앞서 열린 단체전과 혼합복식, 여자단식에서 모두 동메달을 따면서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을 즐기던 신유빈은 2일 여자복식 결승에서 띠동갑 전지희와 짝을 이뤄 북한조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석은미 코치와 끌어 안으며 눈물을 보이던 신유빈은 시상대에서 전지희와 '화살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앞세워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된 문동주는 대만과의 예선 라운드에서 4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면서 신인투수의 경험부족을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7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다시 선발로 등판한 문동주는 6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선보이면서 '결승전의 영웅'에 등극했다. 그렇게 한국야구는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질 우완 에이스를 발굴했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군인의 신분으로 대회에 참가해 2m 35cm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기록한 '스마일점퍼' 우상혁은 9월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안게임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우상혁은 아시안게임에서 무타즈 바르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을 따냈다. 아쉬움도 컸겠지만 우상혁은 2년 전 올림픽 때 그랬던 것처럼 밝은 미소로 바르심의 금메달을 축하하며 아시안게임을 즐겼다.
▲ 금메달 조준하는 임시현 7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여자 개인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임시현이 활시위를 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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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보증수표로 꼽힌 종목은 단연 양궁 여자 리커브 종목이었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리커브의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도,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강채영도, 전 세계랭킹 1위 최미선도 아니었다. 대표팀의 막내 임시현이 4일 혼성 단체전을 시작으로 6일 여자 단체전, 7일 여자 개인전을 휩쓸면서 3관왕의 주인공으로 등극, 내년에 있을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배드민턴 여자단식은 전통적으로 아시아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다. 실제로 여자단식 세계랭킹에서도 한국의 안세영과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 중국의 천위페이, 대만의 타이추잉, 중국의 허빙자오 등 아시아 선수 5명이 세계랭킹 상위 5위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말 '레전드'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세계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린 안세영은 현 시점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안세영은 세계최강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1일 중국과의 단체전 결승에서 단식 1번주자로 나와 천위페이를 52분 만에 세트스코어 2-0으로 꺾고 한국의 금메달을 견인한 안세영은 7일에 열린 단식 결승에서도 무릎부상을 극복하고 천위페이를 세트스코어 2-1로 제압하며 2관왕에 등극했다. 부상만 잘 회복한다면 안세영은 내년에 열릴 파리 올림픽에서도 가장 강력한 여자단식 금메달 후보다.
2012 런던 올림픽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자랑한다. 2014년 인천 대회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남자 사브르는 이번 대회에서도 개인전(오상욱)과 단체전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특히 중국을 상대한 단체전 결승은 45-33의 스코어가 나왔을 정도로 기량차이가 컸다. 한국의 '어펜저스'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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