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값 내리고 지원 늘려도 나는 아직 ‘NO’인 이유 [기자 수첩]

장정욱 2023. 10.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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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 대비 비싼 가격 우선 고민
오랜 충전시간에 다시 한 번 망설여
개선된 인프라도 내연기관 못 미쳐
‘착한 선택’ 알지만 외면하게 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전기차 충전소에 안내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지금 타는 차는 2008년 11월식이다. 주행 거리는 18만㎞를 조금 넘었다. 연식으로 보면 교체를 고민할 때고, 주행 거리를 보면 좀 더 타도 무리가 아니다. 아내가 일을 다시 시작하면 아무래도 차가 한 대 더 필요할 것 같아 고민 중이다.

차량 구매에 ‘거금’이 들어가는 만큼 아내와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아내는 경차와 SUV를 두고 갈등 중이다. 나는 중형급 이상 세단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최종 선택권은 아내에게 있다.

최근 환경부는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확대했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주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차량 구매 선택지에 ‘전기차’는 없다.

나는 지인들과 차량 관련 대화를 할 때마다 ‘아직은 전기차를 구매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여행지 등에서 몇 차례 전기차를 이용해 본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차량 가격이 너무 비싸다. A 자동차를 예로 들면 가솔린(휘발유) 최고 등급 차량이 3000만원 초반이다. 이른바 ‘깡통’을 사면 25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A 자동차를 전기차로 사면 최고 사양 기준 5000만원이 넘는다. 깡통 역시 4500만원 수준이다. 전기를 연료로 쓴다는 것 하나 다를 뿐인데 20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받으면 가격 차는 크게 줄어든다. 국비보조금(최대 780만원)에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까지 더하면 일반 차와 격차는 많이 좁혀진다. 하지만 이는 보조금 등을 최대로 받은, 최상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전기차 기준 5700만원 이상 차량은 보조금 지원이 절반에 그친다. 대형차를 선호하는 경우 전기차와 내연기관 가격 차는 더 커진다. ‘전기차 살 돈으로 더 높은 등급의 내연기관을 사는 게 낫지 않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배터리의 태생적 한계도 전기차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충전시설과 같은 인프라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빨라도 20~30분 이상 걸리는 충전 속도는 너무 큰 불편 사항이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자동차 배터리는 초고속 충전으로도 완충까지 30분 가까이 걸린다. 주유하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내연기관만 25년째 이용한 기자에게 30분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리 길지 않은 배터리 수명도 단점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평균 수명을 7년 정도로 본다. 현재 같은 차량을 15년째 타고 있는 나로서는 배터리를 최소 두 번은 교체해야 한다는 의미다. 급속 충전을 자주 하면 배터리 수명은 더 줄어든다. 배터리 교체비가 대략 2000만원 정도니까 두 번 교체하면 중형차 한 대 값이다.

전기차를 타는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충전 인프라는 분명 좋아진 듯하다. 아파트마다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공영주차장이나 공공시설에도 충전기 보급이 크게 늘었다.

그런데도 140년 역사를 거치며 켜켜이 완성해 온 내연차 중심 세상에서 전기차 인프라는 아직 기대 이하다. 아파트 내 충전시설은 전기차와 일반 차 겸용 공간이 많아 주차난이 심한 곳은 사실상 사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비싼 가격도 여전히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최근 환경부가 구매보조금을 확대했고, 일부 제조사에서 기존 차량 판매 가격을 소폭 낮췄으나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친환경 차량은 분명 대세가 돼야 한다. 지구와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게 옳다. 다만 늘 현실은 이상과 괴리가 있다. 제도는 발전하지만, 그 속도는 소비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친환경 차량 보급에 관한 정부 의지는 강하다. 배터리나 충전 인프라 관련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소비자의 친환경 차에 관한 인식 등은 전기차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모든 소비자가 ‘착한’ 선택을 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기술로, 더 실질적인 제도로 친환경 차 시대가 일찍 도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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