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시기에 한약 먹어라? 서울시 50만원 지원에 싸움 났다

황수연 2023. 10. 9.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산하고 바로 한약을 지어 먹었는데 산후풍 같은 것 느껴보지 못했고요. 조리원에서 마사지 안 받고도 부기 다 빠져나왔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처럼 출산 후 한약 복용 후기를 공유하며 이를 추천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산모들은 산후 보약을 먹는 게 좋은지, 어느 한의원을 찾아야 할지 정보를 공유한다. 지난 9월부터 서울시에서 저출생 대책의 하나로 산후 보약 바우처(50만원)를 지원키로 하면서 산모들 관심이 더 뜨겁다. 서울에 거주한 지 6개월 이상 됐다면 누구나 이 바우처를 신청할 수 있는데 7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 1명당 100만원을 지원한다. 그중 절반은 건강회복에 필요한 의약품·한약·건강식품 구매 때 쓸 수 있다. 서울시는 “출산 후 산모가 몸과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 여성의 평생 건강이 좌우되는 만큼, 소득 기준 없이 모든 산모를 지원해 빠른 건강권 회복을 도울 것”이라고 사업 취지를 설명한다.

상당수 산모는 지원금이 나오는 만큼 한약 조제에 바우처를 쓰고 있다. 한 산모는 “미리 한의원 가서 약을 지어놓고 약을 찾으러 가서 바우처 카드로 재결제했다”라며 “출산 후 손가락도 허리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한 달 뒤 많이 나아지길 기대한다”고 글을 올렸다. 한의원에서도 “서울시 산후 한약 바우처를 사용하는 분들에게 특별 할인 이벤트를 한다”라며 대대적 광고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 산모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의료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며 산모 사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을 회원으로 둔 대한모유수유의사회는 최근 서울시 한약 지원 사업을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정유미 대한모유수유의사회 전 회장(소아청소년 전문의)은 “전 세계 모든 전문가 단체가 권고하는 첫 6개월간 완전 모유수유 시기에 수유모가 한약을 먹고 젖을 먹이는 건 아주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 의료 전문가들이 모유 수유 중 약물안전성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는 ‘락트 메드’란 홈페이지에는 한약재에 대한 안전성 정보 자체가 없다”라고도 했다. 미국 소아과학회에서도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족해 주의하라고 권고하며,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에서도 한약 복용을 피해야 하는 6가지 경우에 임신부와 수유부를 포함한다는 게 의사회 설명이다.

의사회는 “우리나라에서도 수유모가 23일간 한약을 먹어 아기에게 급성 간염이 발병한 사례가 있다”라며 “엄마의 한약 복용을 중단하고 간염을 치료하자 아기 상태가 호전됐다”고 했다. “안전성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산후 한약을 모든 산모가 쓰게 하는 건 불필요한 약을 ‘강매’하는 것과 같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근영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검증되지 않은 성분이 수유 중 애기에게 넘어갈 지 모른다. 아이와 성인은 대사가 달라 향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소수 의 산모가 호불호에 따라 자의적으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를 마치 장려하듯 바우처로 지급하는 건 의미가 다르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신생아학회 등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를 접한 한 산모들은 “산후 보약을 먹으며 수유하는데 너무 찝찝하다” “한의원에서는 오히려 모유 촉진에 도움된다고 하더라. 완모(완전 모유) 중인데 산후 보약을 아직 먹고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의원 간판. 중앙포토

한의계에선 “산후 한약은 임신, 출산 과정으로 허약해진 산모의 몸을 보호해주며 자궁 수축을 도와 회복을 빠르게 해준다”라며 “한약을 통해 산후조리를 해야만 산후풍이나 산후 발열·부종·변비·피로감 등 여러 불편한 증상을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문영춘 대한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어 ‘모르니까 안 먹는 게 안전하다’는 게 서양의 주장인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은 재료를 쓰며 독성이 우려돼 임신, 수유부가 먹어선 안 되는 약은 제외하고, 용량·처방도 산모에게 맞춰 안전하다”라고 했다. 급성 간염 사례를 두고도 “양방서 쓰는 진통제가 빈도로 따지면 훨씬 많다”라며 “양약의 경우 3%, 한약의 경우 1% 안 되는 농도로 태아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이 정도로는 약효에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주장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