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불면과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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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다.
중학생 무렵 친구에게 "잠이 안 오면 커다란 검은 구덩이에 발을 집어넣는 상상을 하면 돼, 그럼 잠에 빠져들 수 있어"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십여 년은 주기적으로 불면을 겪어온 것 같다.
매일 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어느 기간 동안이 그렇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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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다. 중학생 무렵 친구에게 “잠이 안 오면 커다란 검은 구덩이에 발을 집어넣는 상상을 하면 돼, 그럼 잠에 빠져들 수 있어”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십여 년은 주기적으로 불면을 겪어온 것 같다. 매일 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어느 기간 동안이 그렇다. 요즘은 나의 불면 주간이다.
검은 구덩이에 대한 상상은 언제부터인가 효과가 없다. 마사지, 해파리 호흡법, 영양제와 수면유도제 복용 등 좋다는 방법 역시 동원해 보았지만 효과는 잠시뿐. 언제나 자려고 누운 채로 서너 시간이 흘러버린다. 견디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파에 앉아 거실의 어둠을 바라본다. 그때 어둠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진다. 내가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나의 곁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둠을 시공간의 상태가 아니라 내 몸과 같이 생동하는 유기체로 여기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며 잠이 온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눈꺼풀 속은 분명히 어둡지만 그때의 어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둠과 나 사이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실에 앉아 어둠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나면 비로소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여길 수 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감정과 상황도 그렇다. 어둠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잘 바라볼 수가 없다. 파묻혀 휩쓸려 버리고 만다. 거리를 두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할 수 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안심되는 일이다. 자전하는 지구에 영원한 밤은 없듯이,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없듯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우리의 삶보다 먼저 사라지기에 우리는 그것을 응시할 수 있다. 언제나 위안이 되는 사실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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