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반복되는 ‘사상 초유의 일’
우리 사회가 타협 없이 극단
대결 치닫고 있다는 위험 신호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에선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세 번 연속 일어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가결은 언론에 비중 있게 다뤄졌다. 굵직한 두 안건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같은 날 현직 검사 탄핵소추안 가결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대상이 된 안동완 차장검사는 탈북자 출신 공무원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한 의혹을 받는다. 유씨는 앞서 사건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 무죄를 확정받았다. 검찰은 2014년 5월 유씨를 대북송금 혐의로 추가 기소했는데 관련 혐의는 2010년 기소유예 처분됐던 것이라 ‘보복 기소’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보고 공소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탄핵안을 발의한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검사 탄핵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검찰 정권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차장검사는 입장문을 통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탄핵소추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만 해도 국민에게 익숙한 절차는 아니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가 사상 처음으로 인용됐고,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판사, 장관에 이어 검사까지 3연속 탄핵소추가 이뤄졌다. 모두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사건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은 2021년 10월 헌재에서 각하됐다. 임 전 부장이 이미 그해 2월 말 임기 만료로 퇴직해 탄핵 인용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었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도 추진했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 7월 전원일치로 기각 결정했다. 탄핵은 중대한 법 위반이 인정돼야 해 법조계에서는 애초 무리한 소추라는 평가가 많았다.
탄핵소추는 대통령, 국무위원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의결할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중대한 법 위반’이 필요하다는 게 확립된 선례인데, 지나치게 남발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최근 민주당 의원 168명을 ‘수박 당도’별로 구분한 명단을 만들었다. 검사 탄핵 발의 참여 여부도 판별 기준 중 하나였다.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을 뜻하는 용어인데 수박 당도가 높을수록 비이재명계에 가깝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엄격한 요건을 갖춰 진행돼야 할 탄핵 소추가 일부 강경파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인한 대법원장 장기 공백 사태도 현재 진행 중이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정기승 후보자 이후 35년 만이다. 공백이 지속돼 내년 1월 퇴임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 후임이 임명제청 되지 않으면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 3명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법원에서는 이 후보자가 완전무결한 법관은 아니더라도 예전 대법원장들에 비해 큰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부장판사는 “다수당 입맛에 맞지 않는 대법원장은 부결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다”고 우려했다.
이 후보자의 낙마가 결격 사유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민주당의 무리한 발목 잡기인지는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실과 여당도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보긴 어렵다. 2017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때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입장문을 내고 국회 협조를 요청했었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번 표결 국면에서 대통령실과 여당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일이 반복되니 국민도 이젠 초유의 일이라는 말에 무감각해진 것 같다. 반복되는 ‘사상 초유의 일’은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 없이 극단 대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험 신호는 아닐까.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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