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지하 450m ‘온칼로’와 경주 ‘호텔’
넘길 순 없어…일찍부터 준비한
핀란드가 찾은 답 온칼로, 깊은
지하에 봉인하는 고준위 방폐장
중저준위 폐기물만 들어가는
경주 ‘호텔’…부안 사태 겪으며
나온 단계적 해법이지만 미뤄진
고준위 방폐장은 숙제로 남아
고준위 방폐장 없는 원전은
청정에너지로 인정 못 받아
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가
무역장벽이 되는 시대…여야,
영구처리시설 더는 늦춰선 안돼
온칼로(Onkalo)는 핀란드 남서부의 섬 지하 450m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영구처분시설,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다. 폐연료봉의 방사선 수치가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까지 10만년. 그 부담을 미래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 아래 일찍부터 준비한 핀란드가 찾은 답은 깊은 지하 동굴에 영구 봉인하는 것이었다. 1987년 제정된 방폐장 관련 법률에 따라 2000년 부지를 확정해 25년 만에 완공을 앞둔 온칼로는 내후년부터 운영된다.
우리나라도 경주 방폐장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이나 방호복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만 들어갈 수 있어 ‘호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저준위 방폐장은 실패와 진통 끝에 나온 단계적 해법이었다. 1980년대부터 울진·영덕 등 후보지를 물색했지만 모두 실패한 채 20여년을 보내고, 격렬한 반대시위를 불러온 2003년 ‘부안 사태’를 겪으면서 나온 결론이 일단 중저준위만 분리해 방폐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미뤄진 고준위 방폐장은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졌다.
영구처분시설인 고준위 방폐장 없는 원전 가동은 ‘화장실 없는 집’에 비유된다. 그렇게 30년째 원전 부지 안에 폐연료봉이 쌓여 있다. 지상 콘크리트 시설(건식보관소)로 옮겨 보관 중인 월성원전을 제외하곤 모두 원전 부지 내 지하수조(습식보관소)에 들어 있는데, 그마저 거의 포화 상태다. 정부의 원전 가동 확대 방침에 포화시점은 1~2년 더 당겨졌다. 몇 년 뒤엔 폐연료봉을 보관하지 못해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당장 착수해도 수십년이 걸리는 만큼 이미 늦었고 더는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그간 여야는 탈원전과 원전 확대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해 왔다. 노무현정부는 2005년 경주 방폐장 건설에 착수하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원전 추가 건설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08년 초엔 국가의 관리 책임과 공론화 절차를 명시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이 제정됐다. 이명박정부는 ‘원전강국’을 내세우며 원전 수출에 나서면서도 고준위 방폐장 문제를 외면했다.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는 임기 후반에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각각 1,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정권이 바뀌자 ‘탈원전 대 원전 확대’라는 프레임 전쟁이 진행 중이다. 한데 이대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미뤄둔 채 원전 확대나 수출은 가능할까.
지난해 유럽연합(EU) 의회는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인정하는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를 의결했다. 단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이용,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설치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 정부는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대통령은 최근 유엔 총회에서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CF)’ 연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EU가 내건 엄격한 조건에 대한 해법은 없다. 고준위 방폐장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무탄소 연합도 원전 수출도 반쪽짜리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원전은 무늬만 청정에너지가 된다.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고 10여 차례 법안 심사도 이뤄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정부의 건식저장시설 건설은 임시저장시설 포화를 늦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왔다. 야당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해 왔지만, 원전은 여전히 30%대 비중을 점하고 있고 신재생에너지는 크게 늘지 않았다. 무역장벽으로 작동하는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은 여야의 오래된 논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삼성 현대 등 우리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했고, 매년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보고한다. 이달부터 국내 항공사와 조선 해운사는 폐식용유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EU가 수송 부문 바이오에너지 사용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제 탄소 중립은 적당히 넘기기 어려운 조건이 됐다. 정부는 원전을 포함하는 무탄소 연합이 RE100을 대체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원전도 녹색에너지라고 아무리 우겨도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하지 않고는 통하지 않는다. RE100과 EU택소노미 모두 데드라인은 2050년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착수하는 것, 당장 여야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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