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12) 코스타 열어 한국 유학생들에게 위로·은혜의 시간 제공

김아영 2023. 10.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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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고해 보면 미국 제일한인침례교회(후일 워싱턴 지구촌교회) 시절에 가장 의미 있는 사역의 탄생은 국제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펼치는 코스타(KOSTA·Korean Students All nations) 유학생 선교 사역이 아니었나 싶다.

1985년 이민 목회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때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한국 유학생들로부터 집회 인도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지역의 한인 유학생들이 미국 교회를 빌려 놓고 집회를 요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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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로 흩어져 신앙생활을 하던
한인 유학생들과 벅찬 집회 마친 후
신앙생활에 목말라하던 이들을 위해
코스타 한인 유학생 선교 사역 시작
이동원(오른쪽) 목사가 1988년 미국에서 코스타 집회를 가진 뒤 강사로 섬기던 동역자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옥한흠 김두화 이승장 홍정길 하용조 오정현 목사(왼쪽부터).


지금 회고해 보면 미국 제일한인침례교회(후일 워싱턴 지구촌교회) 시절에 가장 의미 있는 사역의 탄생은 국제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펼치는 코스타(KOSTA·Korean Students All nations) 유학생 선교 사역이 아니었나 싶다. 1985년 이민 목회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때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한국 유학생들로부터 집회 인도 요청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한인교회는 주로 도시 지역에만 있었고 지방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한인교회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지역의 한인 유학생들이 미국 교회를 빌려 놓고 집회를 요청한 것이다. 사흘여간 보람찬 집회를 마친 뒤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와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미국 교회로 흩어져 신앙생활을 할 그들이 제대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을까.’ 갑자기 한국에서 여름철이면 여러 교회와 선교기관 주최로 열리던 뜨거운 수양회 현장들이 뇌리를 스쳤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유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한다면 은혜를 받고 1년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제일한인침례교회 안에 유성회(유학생 성서연구회)가 있었다. 교회 스태프, 유성회 회원들과 이 문제를 두고 의논했더니 전폭 지지한다고 했다. 이 안건을 다시 교회 제직회에 올리니 모두 기뻐하면서 교회가 후원하겠다고 했다. 집회 중에는 김치가 고픈 학생들에게 김치를 공급하고 집회 후엔 워싱턴 관광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86년 6월 제일한인침례교회에서 1시간 20여분 걸리는 수양회관에서 첫 번째 코스타가 열렸다. 나는 이 모임이 우리 교회만의 행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워싱턴 지역의 이원상 김원기 목사님과 의논했다. 한국으로 전화해 내 믿음의 형이자 과거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섬긴 홍정길 목사님과도 의논했다. 간헐적으로 보스턴을 위시한 지역에서 유학생들을 만난 홍 목사님도 너무 좋다 하시면서 함께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강사들이 강사비를 안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후원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한국에서 오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유학생들은 결국 한국으로 귀국할 인재들 아닌가. 그리고 LA의 오정현 목사님에게도 연락했다. 과거 한국 내수동교회에서 여름 수양회를 인도하며 뜨겁게 찬양을 인도하던 그의 매력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기독학생회(IVP) 총무를 하던 송인규 교수님도 함께하기로 했다. 막강 강사진으로 시작된 코스타는 3년 만인 1988년 1000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등록해 초만원 사례를 이뤄 우리는 더 넓은 장소를 고민해야 했다.

88년 코스타에는 소중한 동역자들인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 등이 오셨고 세계적인 복음주의 석학인 칼 헨리 박사도 참석해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셨다. 그 시절 한국의 대학가는 연일 데모하다가 목숨을 바치는 청년들의 희생으로 술렁이고 있었고 민족의 장래는 불안하기만 했다. 쿼바디스 도미네(어디로 가시나이까, 주여)!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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