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TV의 자세
방송 출연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지난해 12월 문제 가족 솔루션 프로인 MBC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에 출연했다가 아동 성추행과 방임 논란을 부른 재혼 부부 얘기다. 재혼 가정 남편이 일곱 살 의붓딸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주사 놀이를 하자며 엉덩이를 찌르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딸은 싫다며 몸부림을 쳤다. 영상은 문제가 있어 보였으나 오은영 박사와 패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시청자 비판이 쇄도해 사과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9개월간 경·검 조사 끝에 남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부부는 이혼했고, 가정폭력 상담사 일을 하던 아내는 직장을 잃었다.
영상의 일부분만 딴 자극적인 ‘짤’이 문제를 키웠다는 주장도 있으나, 애초 방송에서 문제 소지가 있는 행동임을 충분히 주지시키지 않은 책임이 크다. 부부 상담을 받으러 방송에 나왔다가 가정이 파탄 났다면 그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까.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의 출연자 보호와 제작 윤리를 되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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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상담 프로 출연 후 가정파탄
비호감 출연자로 연애 예능 인기
일반인 출연자 대상 제작윤리 필요
」
장안의 화제인 케이블 ENA·SBS플러스의 ‘나는 솔로’. 일반인 대상의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을 표방해 독보적 인기를 끄는 연애 리얼리티다. 최근 ‘나는 솔로 16기-돌싱편’ 최종회의 시청률은 7%였다. 16기 최종회 직후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심야 시간임에도 25만 명이 동시 접속했다. 16기의 맹활약 덕에 ‘나는 솔로’는 이번 추석 연휴 OTT 이용률 1위에도 올랐다(한국리서치). 각종 유행어와 ‘밈’도 탄생시켰다.
5박6일 격리된 공간에서 합숙하며 짝을 찾는 구도는 통상적이지만 연예인 지망생이 많이 나오는 여타 프로와 달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녀가 출연한다. 연애의 환상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보다 커플 성사를 향한 ‘날것’의 감정과 분투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특징이다. 순간순간 (커플) 선택을 강요받고 승자와 패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인간 군상의 치부와 민낯이 드러난다. 16기가 제대로 보여줬듯 뒷담화와 소문, 질투와 콤플렉스, 저울질과 비매너, 오지랖 떨기와 서열화 같은 것들이다. ‘이건 예능이 아닌 다큐’라든지, ‘인간극장’ 혹은 ‘사회실험’,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이 나온다. 인간관계의 교훈을 얻는다는 시청 소감도 많다.
문제는 이처럼 인간의 치부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 속 출연자들이 고스란히 도덕적 비난을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이끄는 결정적 존재는 밉상 짓을 하는 비호감 캐릭터 ‘빌런(악역)’들인데, 시청자들은 빌런을 욕하면서 프로를 보고 악플 세례를 퍼붓는다. 주변의 인간관계를 빌런에 투사해 몰입하기도 한다(“직장 상사가 저런 밉상이에요!”). 유튜브에는 이들을 난도질하는 자칭 심리분석 콘텐트가 쏟아진다. 빌런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나온 16기는 출연자 4명이 방송 중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리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물론 악플 세례 속에서도 일부 출연자들은 ‘관종력’을 발휘하고,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폭등하며 유명인의 반열에 오른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나 그들은 짝을 찾으러 방송에 나왔고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취약한 일반인들이다. 빌런이 활약할수록 프로가 흥행하니 커플 성사율을 높이는 것보다 갈등과 흥미 요소가 극대화되는 쪽으로 출연자들을 골라 뽑고, 연애 예능이라는 이름의 인간 실험극에 몰아넣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나는 솔로’의 연출·제작자는 이 장르의 원조 격인 SBS ‘짝’(2012~2014)의 연출자로, ‘짝’은 프로그램 촬영 중 과도한 심리적 압박을 받은 여성 출연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폐지됐다. ‘나는 솔로’는 10기·16기 돌싱편을 방송했는데, 둘 다 빌런들의 활약과 함께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래서 돌싱은 돌싱”이라는 부정적 댓글도 많았다. 돌싱들을 출연시켜 놓고 돌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 아이러니. 그 책임도 적지 않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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