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재벌의 몰락...부동산ㆍ금융 맞물린 140조 부채 ‘폭탄’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박성훈 2023. 10. 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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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지난 7월 4일 쉬자인(許家印) 헝다(恒大) 회장은 광저우헝다 축구팀 경영 회의에서 ‘내년 리그 우승’이란 목표를 제시했다. 헝다 팀은 중국 프로축구 리그에서 여섯 번의 우승 전력이 있다. 그러나 경영 악화로 핵심 선수들이 팀을 떠난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 2주 뒤 발표된 헝다 그룹 재무 보고서에서 2021년과 2022년 누적 손실액은 8120억 위안(150조원)에 달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지난달 28일 쉬 회장은 불법 범죄 혐의로 당국에 체포됐다. 중국 부동산 전성기의 1위 부자로 군림했던 쉬자인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쉬자인(65) 헝다 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불법 범죄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사진 바이두 캡처

13년 만에 증시 상장...‘문어발’ 확장


쉬자인 회장은 체포됐지만 7일 헝다그룹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그의 인삿말이 올라와 있다. 사진 헝다그룹 홈페이지 캡처
허난성 농촌 출신인 쉬 회장(65)은 우한철강대학을 졸업한 뒤 10년간 철강회사를 다니다 38세에 부동산 개발회사 헝다를 설립했다. 1996년 중국 정부는 부동산을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는 개발 붐이 일던 광저우시에 35개 동 규모의 진비가든(金碧花院) 아파트를 성공적으로 분양하면서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이후 토지 취득부터 허가ㆍ분양ㆍ착공ㆍ준공ㆍ입주ㆍ수익까지 1년에 끝낸다는 ‘8개 당년(當年)’을 모토로 회사를 급성장시킨다. 헝다는 2003년 중국 건설사 10위권에 진입했고 13년 만인 2009년 11월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첫날 시가 총액은 705억 홍콩달러(약 12조원), 쉬 회장은 순자산 8조원으로 단번에 중국 부자 1위에 올라섰다.

이때부터 헝다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 시작됐다. 인수 합병을 통해 관광, 호텔, 축구, 음료, 유통 사업을 벌였고 2016년 금융권까지 진출했다. ‘헝다재부(財富)’를 설립해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자체적으로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동시에 성징(盛京) 은행 주식 37%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이듬해 시장의 우려에도 ‘헝다자동차’까지 세웠다. 그가 지휘한 헝다 그룹은 2019년 매출 5072억 위안, 순이익 314억 위안(5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지만 몰락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2020년 자금 위기...예금 담보 2조 차압


중국 남부 선전시에 위치한 헝다 본사 건물. 사진 바이두 홈페이지 캡처
위기는 2020년 말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기 하락에 건설 중인 아파트들의 헐값 판매가 진행됐고 일부에선 허가도 나기 전에 사전 판매가 이뤄졌다. 결국 2021년 9월 헝다 부동산 건설에 투자금을 공급해온 ‘헝다재부’가 만기 도래 상품의 원금 지급 연기를 공식화했다. 계약이 만료된 투자금을 3개월마다 10%씩 분할 상환한다고 했지만 석 달도 안 돼 매월 8000위안(1인) 균등 지급으로 축소했다. 피해자는 수십만 명으로 추산됐다. 2022년 3월엔 ‘헝다물업(物業ㆍ부동산)’이 예금 담보 134억 위안(2조4700억원)을 은행에 차압당했다. 자금 회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은행의 선제 조치였다. 주식은 백지장으로 변했다. 주가는 최고점 대비 95% 급락했고 홍콩 증시가 곧바로 헝다, 헝다부동산, 헝다자동차의 주식 거래를 중단시켰다.
김영옥 기자

주택 90만 채 미준공, 피해 눈덩이 예고


허난성 신양시 헝다 아파트 건설 현장. 공사가 중단돼 분양자들의 항의가 계속 됐다. 사진 웨이보 캡처
부동산과 금융이 연결된 ‘헝다제국’의 추락은 전례 없는 손실액을 기록하고 있다. 헝다 측은 공개 보고서를 통해 ‘헝다재부’의 투자 원금 미지급액이 약 410억 위안(7조567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중 2022년 12월 말까지 70억 위안을 지급했지만 전체의 17%에 불과한 수준이다. 2023년 8월 기준 지급하지 못한 원리금은 300억 위안(5조5370억원)이 넘는다. 결국 지난달 16일 헝다재부의 경영진 10여 명이 선전시 공안당국에 긴급 체포됐다. 공안당국은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헝다재부’가 보유한 정기예금 증서가 부동산 건설 자금 확보를 위해 다른 금융기관에 중복으로 제출된 사실도 드러났다. 헝다물업은 부동산 계약금을 전체 판매 대금으로 계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부풀린 것으로 밝혀져 부채 규모가 공개된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피해가 커지면서 각종 민원과 신고가 쏟아지고 있고, 헝다 회사 간 불투명한 내부 거래와 자금 돌려막기, 회계 부정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김영옥 기자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헝다의 부동산 프로젝트 중 731개의 완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또 완공을 보장한 주택 140만 채 중 지난해 말까지 50여만 채만 준공된 것으로 파악됐다. 헝다가 계약한 공사 금액은 총 6039억 위안(111조원)에 이르는데 주택을 완공해 양도하지 못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계약자와 은행의 몫이다. 현재 헝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33억 위안에 불과하다.

헝다 그룹의 해외 채무도 눈덩이다. 2022년 12월 말 기준 해외 부채는 1406억 위안(26조원ㆍ192억 달러)에 이르고 2021년 말 2억 6000만 달러의 사모채권 이자 상환을 못 해 부도 위기를 맞은 바 있다. 결국 지난 8월 헝다 해외 법인이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고 채권단 회의는 이미 세 차례 미뤄지며 협의도 불투명한 상태다.

즉 헝다그룹의 누적 부채 규모를 총합하면 헝다물업 공사계약 부채 111조원, 헝다재부 미지급 원리금 5조 5000억원, 해외 채무 26조원 등 최소 약 142조원 규모다.


중국 부동산 시장 추락 가속화


중국 SNS에선 쉬 회장이 낸 책 '헝다전기'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 돌고 있다. 사진 웨이보 캡처
헝다 사태는 부동산과 금융이 유착된 중국 기업의 내부 자본 거래 문제를 여실하게 드러냈다. 이로 인해 은행권은 민간 부동산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이후 중국 부동산 시장의 추락을 가속화했다. 쉬 회장은 여성가무단 등 추문이 잇따라 폭로되며 “인민 최대의 적”으로 전락했다. 당국이 헝다 사태 2년 만에 쉬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을 줄줄이 체포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사태를 해결할 복안이 있는 것일까. 로이터통신은 “부동산 거대 기업의 지저분한 붕괴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채의 미완성 주택과 중국에서만 수천억 달러의 부채를 남기며 이미 침체한 중국 경제를 휩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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