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역사와 지형과 건축, 절두산 순교성지
병인(1866)년 프랑스는 조선이 자국 선교사 9명을 처형한 이유로 한강 양화진까지 침략했다. 강화도 전투 후에 프랑스군이 철수한 후 조선 정부는 양화진 잠두봉에서 천주교도 수백 명을 처형하고, 이 절벽산을 절두산이라 불렀다. 한국 천주교는 1967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이곳에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과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을 세웠다. 절벽 정상에 자리한 성당은 상승감을, 중간에 자리한 기념관은 안정감을 주어 절두산 지형의 수직적 형상을 극대화했다. 양화진을 굽어보는 절두산 성당은 야만적 시대의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는 증언자가 되었다. 지형과 역사가 더욱 살아나는 한국 근대건축의 명장면이다.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경사지에 기둥을 세우고 박물관 건물을 얹었다. 밀양의 영남루나 진주 촉석루 등 한국의 전통 누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건축적 방법이다. 위로 볼록한 콘크리트 지붕은 초가지붕 곡선을, 가는 기둥과 돌출된 보 역시 전통적인 목구조를 연상하게 한다. 모더니즘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곳곳에 전통적 건축어휘로 가득한 1960년대 특유의 건축이다. 원통형 성당의 조형은 매우 독립적이지만 사다리꼴의 널찍한 종탑을 세워 성당과 기념관 건물을 형태적으로 연결한다. 원형 지붕은 갓 쓴 순교자의 머리며, 종탑은 칼이라는 직설적 해석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성당과 기념관은 건축가 이희태(1925~1981)의 작품이다. 김중업·김수근과 함께 한국의 1세대 건축가로 꼽히며 경주박물관과 옛 공주박물관, 남산 국립극장 등 수작들을 남겼다. 그는 외국 유학은 고사하고 고등 건축 교육을 받지 못한 비주류의 건축가였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가 자생적인 전교와 순교 속에서 성장했듯 이희태는 거의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외국인선교사 묘원까지 인근에 있는 절두산 성지는 지형과 역사와 건축이 통합된 기억과 추모의 장소다. 건축가 이희태도 잊히지 않기를.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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