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따도 못 따도…한국 스포츠 DNA 쾌활해졌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DNA가 달라졌다.
8일 끝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종목은 펜싱과 수영이었다. 각각 6개의 금메달을 땄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태권도(5개)와 양궁(4개)도 ‘효자 종목’ 역할을 해냈다. 배드민턴과 e스포츠에서도 금메달 2개씩을 수확했다. 특히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부진했던 수영과 배드민턴이 국제 경쟁력을 회복한 건 고무적이다.
전통적으로 강했던 사격(금 2개)과 유도(금 1개)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냈다. 대표적인 투기 종목인 레슬링과 복싱 등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남녀 배구와 남자 농구·남자 핸드볼 등이 ‘노메달’에 그치는 등 야구·축구·하키를 제외한 구기 종목 성과도 좋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이번 대회 내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쾌활한 모습으로 경기 자체를 즐겼다. 여자 역도 76㎏급에 출전한 김수현은 동메달을 딴 뒤 “세 번째 아시안게임에서 드디어 메달을 따서 기분이 좋다. 북한의 림정심 언니를 좋아한다. 더 열심히 해서 (옆에 있는) 북한 선수들처럼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애하는 원수님 덕”이라고 울먹이며 경계하던 북한의 송국향과 정춘희는 김수현의 솔직한 태도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자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딴 우상혁도 그랬다.
“상대 선수 덕에 나도 성장, 재밌는 경기만으로 기쁘다”
그는 ‘최강’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바르심 선수와 경쟁하면서 나도 성장하고 있다. 그 덕에 흥미롭고 재밌는 경기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대한체육회가 이번 대회에서 처음 선정한 한국 선수단 남녀 최우수선수(MVP)로는 나란히 3관왕에 오른 김우민(수영)과 임시현(양궁)이 뽑혔다. 한국 자유형 중장거리 간판 김우민은 남자 계영 8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사상 첫 수영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김우민은 개인 종목인 자유형 800m와 400m에서도 금메달을 따 최윤희(1982년 뉴델리 대회)와 박태환(2006년 도하·2010년 광저우 대회)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로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에 올랐다.
양궁 대표팀의 ‘막내 에이스’ 임시현도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동료들과 금메달을 합작한 뒤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팀 선배 안산(광주여대)을 꺾고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양궁 3관왕이 나온 것은 1986년 서울 대회 당시 양창훈(4관왕)·김진호·박정아(이상 3관왕) 이후 37년 만이다.
투혼상은 배드민턴 2관왕을 차지한 안세영, 성취상은 탁구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신유빈에게 돌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 문강호와 여자 배영 200m 동메달리스트인 고교생 이은지는 격려상을 받았다.
39개 종목에 역대 최다인 1140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금 42개·은 59개·동 89개를 따내 종합 3위에 올랐다. 중국이 금메달 201개로 1위, 일본이 52개로 2위다. 한국은 총 메달 수(190개)에서는 일본(188개)을 앞섰다. 일본은 내년 파리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 이번 대회 여러 종목에 국가대표 2진급 선수를 내보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많은 선수가 투혼을 보여주고 자기 목표를 성취한 빛나는 대회였다”고 총평하면서도 “성과와 함께 한계와 문제점도 드러났다. 구기 종목과 투기 종목의 성적이 특히 저조했다. 인도·우즈베키스탄·이란 등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어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국가대표 선수촌에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파리올림픽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항저우=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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