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해도 돼” 엄마 외침에도…안세영, 무릎 부상 딛고 2관왕
세계랭킹 1위 안세영(22·삼성생명)이 ‘배드민턴 여제’의 품격을 보여줬다. 부상을 딛고 맞수를 제압하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세영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3위 천위페이(25·중국)를 세트스코어 2-1(21-18, 17-21, 21-8)로 꺾었다. 지난 1일 여자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개인전도 금빛으로 장식한 안세영은 지난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29년 만에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2관왕에 올랐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7일 개인전 5종목(남녀 단식·남녀 복식·혼합 복식) 결승을 진행하기에 앞서 일정을 급히 변경했다. 당초 2번째로 열기로 했던 여자 단식 경기를 맨 마지막으로 돌렸다. 아시안게임 전체 일정 중 가장 마지막에 열리는 경기에서 중국 선수 천위페이가 안세영을 꺾고 홈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마무리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안세영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면서 조직위의 구상을 뒤엎었다.
안세영은 지난 5일 열린 개인전 8강 경기 도중 무릎을 다쳤다. 4강전과 결승전을 치르는 동안 상태가 악화됐다. 천위페이와의 결승전 1세트 18-16으로 앞선 상황에서 갑자기 극심한 통증을 느낀 듯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괴로워하는 딸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이현희씨가 “그만해, 기권해도 돼”라고 외칠 정도로 안쓰러운 장면이었다.
아픈 무릎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안세영은 투혼을 발휘한 끝에 21-18로 1세트를 가져왔다. 이어진 2세트를 17-21로 내준 뒤 3세트에 부상을 뛰어넘는 투혼을 발휘하며 기적 같은 21-8 승리를 거둬 경기를 마무리했다.
기적의 출발점은 2세트였다. 안세영은 통증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한 방어와 구석을 찌르는 공격으로 랠리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갔다. 천위페이의 약점인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한 승부수였다. 비록 2세트에선 접전 끝에 4점 차로 졌지만, 무려 29분 동안 공방전이 벌어졌다. 예상대로 천위페이는 3세트 들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안세영은 8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1세트 도중 오른쪽 점프 동작을 할 때 무릎을 펴는 과정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면서 “다친 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힘을 빼고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며 “(기권하라는) 어머니의 외침을 못 들었지만, (들었더라도) 계속 뛰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천위페이는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아시안게임 데뷔전을 치른 안세영에게 1회전 탈락의 굴욕을 안겼다. 이후 도쿄올림픽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그런 천위페이를 맞아 무릎 부상을 안은 채 승리를 거둔 건 역설적으로 안세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증거다. 내년 파리올림픽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하는 안세영의 가장 큰 적은 부상이다. 그는 “걷는 데 지장 없고 가볍게 뛸 수 있는 정도”라고 무릎 상태를 설명한 뒤 “경기 내내 매우 아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고 했다.
‘배드민턴 레전드’ 하태권 해설위원은 “앞으로 10년 정도 안세영의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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