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 검사기 개발…30년째 취준생 등불 됐다
577돌 한글날,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권 교수는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부산대에 부임했다. 그는 “1990년대 사무자동화(OA)가 본격화하면서 컴퓨터로 문서를 제작하는 일이 흔해졌다”며 “올바른 문서 제작을 돕기 위해 검사기를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무료 서비스를 통해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등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맞춤법 검사기는 온라인 사이트(http://speller.cs.pusan.ac.kr)에 접속하면 이용할 수 있다. 작성한 글을 복사해 창에 붙여만 넣으면 된다. 단순 오·탈자는 물론 문맥상 틀린 표현을 찾아주는 기능이 뛰어나다는 게 업계 평판이다. 이용할 때 별도의 회원 가입을 통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입력한 글의 내용은 검사를 마치면 삭제된다. 권 교수는 “검사하려는 글에 개인정보나 민감한 내용이 담길 때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용자의 글 내용이나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는 건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라는 별명이 붙은 이 검사기의 유지·관리는 권 교수가 설립한 벤처 기업인 ㈜나라인포테크가 맡고 있다. 나라인포테크에선 국문학 전공자와 엔지니어 등 직원 5명이 일한다.
이 맞춤법 검사기에 최근 거대 언어모델 AI의 학습 용도로 의심되는 ‘수상한 접속’이 감지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권 교수는 “특정한 IP 한 곳에서 짧은 시간에 검사를 약 600만 건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접속한 IP를 확인해보니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며 “비정상적으로 검사기를 과다하게 이용해 클라우드 서버 비용이 평소의 2배 가까이 나왔는데 원인 조사 끝에 AI 접속이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나라인포테크는 지난 7월 맞춤법 검사기 웹페이지를 통해 “최근 특정 IP에서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이 발견됐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청구됐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불가능해진다”고 공지했다. 이용자들은 30년 가까이 무료 제공된 맞춤법 검사기가 유료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감시를 강화하고 의심스러운 IP 접속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며 “개인 이용자 서비스를 유료화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권 교수는 매일 맞춤법 검사기의 검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매달 한 차례 정기 업데이트를 해왔다. 하지만 챗GPT 등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학습형 AI가 머지않아 맞춤법 검사기 기능을 대체할 것으로 본다. 그는 “스스로 학습하는 AI와 비교하면 사람이 연구해 규칙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며 “언젠가 밀려나겠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업데이트하며 AI와 경쟁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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