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소비 얼어붙나…8월 소매판매 41개월래 최대 감소
소비자들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가계의 여윳돈이 이전보다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내수 소비가 되살아나지 못하면 정부가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는 ‘상저하고’ 흐름은 강도가 약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대표적인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 지수(계절조정)는 지난 8월 102.6(2020년=100)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108.2)에 비해 5.2% 하락했다. 코로나19가 본격화했던 2020년 3월(-7.1%) 이후 3년5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전월 대비로는 0.3% 줄었다. 7월(-3.3%)에 이은 2개월 연속 감소로, 역시 지난해 4∼7월 이후 1년여 만에 처음이다.
소매판매액 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700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다. 물가 요인을 제거한 경상 판매액 불변금액에서 계절·명절·조업일수 변수까지 제외한 수치다. 계절적 요인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제거된 만큼 경제주체들의 실질적인 재화 소비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의복·신발·가방 등 준내구재가 1년 전에 비해 7.6% 감소했고, 비내구재 가운데서는 음식료품의 소비가 8.3% 줄었다. 소비 심리와 연관성이 높은 숙박·음식점업은 4.4%, 도매·소매업은 3.6% 각각 감소했다. 이런 소비 둔화 흐름은 한국은행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자료에도 나타나는데,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1% 감소한 바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7월에는 호우라는 일시적 요인이 있었지만, 8월에도 ‘마이너스’였다는 것은 지금 소비가 안 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가계의 자금 사정도 좋지 않다. 2분기 가계의 월평균 흑자액은 114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8%(18만3000원) 감소했다. 2020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가계의 이자 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2분기 7.1%에서 올해 2분기 42.4%로 수직 상승했다. 지난 2분기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383만1000원으로 전년보다 2.8%(11만2000원) 줄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 감소율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가계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망도 좋지 않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3.7%)은 5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우려가 커지는 건 먹거리 가격 상승이다. 우유 원유와 설탕, 쌀 가격이 오르면서 흰색 식품 위주로 가격 상승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는 ‘화이트플레이션’(화이트+인플레이션)이 닥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쌀은 1년 전보다 14.5% 올랐다. 설탕(16.9%), 우유(9.3%) 등 ‘화이트플레이션’ 품목들 모두 전체 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했다.
8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설탕 가격지수는 162.7로, 전월보다 8.8% 올랐다. 설탕 가격지수가 두 달 연속으로 오르면서 2010년 11월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 중 하나인 인도에 가뭄이 발생하면서 사탕수수 수확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생산량이 줄자 인도는 설탕 수출을 제한했고, 설탕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유행하는 탕후루의 핵심 재료가 설탕이다. 원재료 가격이 오른 데다 많은 수요까지 이어지고 있어 젊은층이 주로 찾는 탕후루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손해용 기자, 세종=정진호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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