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짜리 샴푸 누가 쓰냐고?...이 나라에서는 불티나게 팔렸다던데 [내일은 유니콘]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이유리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economy06@mk.co.kr) 2023. 10.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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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1~2년 새 급성장한 K뷰티 브랜드 특징은 ‘여성용, 클린, 비건뷰티’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공식을 살짝 벗어났는데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승승장구하는 K뷰티 스타트업이 있다. 세이션이다.

세이션 블랙베리 샴푸. (세이션 제공)
세이션의 주력 브랜드는 남성 화장품 브랜드 ‘그라펜’.

헤어 고정·스타일링용 제품인 ‘포마드’로 시작해 남성용 립밤과 퍼퓸, 크림 등을 일본과 동남아 등에 수출하면서 훌쩍 컸다. 지난해 매출액은 210억원 정도. 이 중 50% 정도를 수출로 만들었다. 올해는 매출 성장률 30% 이상을 내다볼 정도로 순항 중이다.

창업자는 구경모 대표. 2013년 자본금 단 800만원으로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사업 초기 구 대표는 “돈이 부족하니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 K뷰티, 남들이 잘 공략하지 않는 해외 시장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해외 쇼핑 플랫폼 ‘쇼피’의 동남아 마켓별 인기 카테고리에서 그라펜의 ‘헤어 케어’ 제품이 싱가포르와 필리핀, 베트남에서 각각 3, 4, 5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더욱 눈길 끄는 점은 해외 마케팅팀 진용.

100억원 이상 수출하는 데 담당 직원 수는 3~4명에 불과하다. 구 대표는 세이션이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뷰티 그로스 해킹(Beauty-Growth-Hacking)’ 덕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다국어로 남긴 수많은 제품 후기(리뷰)들을 AI가 번역한 후 제품 속성에 맞춰 실시간으로 회사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뷰티 그로스 해킹’을 통하면 실제 현지에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해외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다음은 일문일답.

구경모 대표. (세이션 제공)
Q. 어떤 계기로 해외에 진출하게 됐나.

A. 2020년 코로나19가 큰 위기였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된 시점, 코로나19 창궐 직전에 한국투자파트너스와 SV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금 50억원 유치에 성공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외출하지 않으니 화장품 매출이 50% 이상 떨어졌다. 심지어 남성 화장품은 여성에 비해 시장도 작아 매출 타격이 더 컸다.

Q. 남성 포마드 등 헤어 스타일링 제품이 인기를 끌었는데, 코로나 타개 선봉장은 샴푸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A. AI 분석을 해본 결과였다. 샴푸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 상황이 많지 않은 코로나19 시기에는 색조 화장품이나 헤어 스타일링 수요는 매우 낮은 것과 다르다. 한국의 샴푸 시장은 주요 브랜드들이 이미 점유율을 꽉 잡아놨기에 갓 이름을 알린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였다. 남은 선택지는 해외 시장뿐이었다.

Q. 동남아 국가도 이미 많은 샴푸 브랜드가 있었을 텐데.

A. ‘고기능성 샴푸’라는 점을 어필했다. 그 당시 동남아 소비자들은 고기능성 샴푸를 써야 한다는 니즈가 없었을 것이다. 2만~3만원 값의 샴푸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니즈를 건드렸다. 마치 ‘우리 샴푸를 쓰면 머릿결도 예뻐지고 두피에도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지인들이 효과와 효능이 좋은 샴푸를 ‘굳이 써야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굳이 써서 더 좋아졌네’라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2만~3만원을 지불해서라도 머릿결과 두피에 좋은 샴푸를 사는 소비자층이 늘어났다.

Q. 제품 출시 전후 소비자 니즈는 어떻게 파악했나. 현지에 진출한 법인도 없다고 하는데.

A. 제품 출시 전에 우리가 직접 디지털 마케팅을 기획·실행했다. 광고를 먼저 투입한 후 이용자들 반응을 보고 있다. 우리는 해외 에이전시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3~4명으로 꾸려진 해외 마케팅 팀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광고 영상을 만들고 있다. 보통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플랫폼에 광고를 노출시켰다. 동남아는 한국보다 국가별로 SNS 광고 노출 비용이 저렴하다. 빠르게 해외 수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이션이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뷰티 그로스 해킹(Beauty-Growth-Hacking)’ 원리. (세이션 제공)
Q. AI 기술 도입이 큰 도움이 됐나.

A. 그렇다.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우리만의 핵심 역량인 ‘뷰티 그로스 해킹’을 도입했다. 인공지능 감성분석 솔루션과 ‘파일럿 런 테스트’를 통해 제품 평가를 분석하고 새로운 영업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라펜 제품에 대한 평가를 취합해 긍정적 속성은 강화하고 부정적 속성은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샴푸 등 여러 제품에 대한 누적 41만개 후기(리뷰)를 분석한다. AI가 소비자 후기를 다 모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최종 결과를 담은 대시보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영업 마케팅 팀은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현재 해외 12개국에 진출해 있는데 우리 브랜드 제품에 달린 모든 후기를 일일이 번역해 분석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때 AI 기술은 상품 기획과 마케팅, CS 대응 시간을 단축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Q. 20대 초반 사업에 실패했다고 들었다. 과거 실패가 이번 사업에 어떤 도움이 됐나.

A. 24살에 친동생과 함께 멕시코로 무작정 떠났다. 부모님이 하셨던 사업 중 유통권이 남아 있었고 멕시코 법인회사를 만들어 3~4년가량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망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실행은 많지 했지만 현명하게 하지 못했다. 사색에 많이 잠겨 중요한 결정과 실행을 곧바로 해낼 수 없었다. 주변에서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이게 맞을까?’라는 생각만 하다 기회를 보냈다.

당시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나만의 눈으로 빠르게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길렀다. X라는 변수는 항상 있지만 나는 꼭 ‘실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생기든, 두렵든 실행을 꼭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실행을 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점이 있다. 우리가 준비 중인 무언가가 지금의 현실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가능성이 있으면 무조건 ‘고(go)’ 한다. 변수가 있더라도 두세 배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다는 믿음이 있으면 바로 진행한다.

Q. 자본금 800만원으로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나.

A. 가장 먼저 시작한 제품은 헤어 스타일링 ‘포마드’다. 흔히 남성들이 머리를 고정하는 용도로 스프레이나 왁스 젤을 쓰지만, 이 제품은 고체 크림 형식으로 제작됐다. 왁스와 달리 수분기가 촉촉하게 남아 있다. 2013년 당시에는 포마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950~1960년대에 남성들이 사용하던 제품을 재해석해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할 수 있길 기대했다.

기획을 마치고 한 제조회사에 갔더니 한 품목을 만드는 데 1500만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랜드 로고를 만드는 데에도 500만원이 필요했다. 자본금 800만원으로 시작한 그에게는 시작부터 위기었다. 구 대표는 이들에게 ‘3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 제품을 성공시키겠다는 포부와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같은 남자로서 남성들에게 필요한 제품이 무엇인지 기획하고 생각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했다. 제품이 제작된 후에도 직접 바이럴 마케팅에 나서며 홍보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국내에서는 남성 화장품 브랜드인 ‘그라펜’과 여성 헤어 보디 화장품 ‘줄라이미’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려 한다. 남성 화장품의 경우 시장이 워낙 작아 성장률이 압도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남성과 같은 니치마켓의 장점을 살리려고 한다. 남성 고객은 제품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여성 대비 이탈이 적어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

더 나아가 기존에 없던 여성 기초 화장품으로 새로운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세이션을 이미 알린 일본과 동남아에서도 동시 론칭할 수도 있다. 오는 11월 공개 예정이다.

싱가포르 베스트 셀링 브랜드 4위에 등극한 세이션 브랜드 ‘그라펜’. (세이션, 쇼피 제공)
동남아 시장에서 K뷰티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일본과 동남아로 진출한 세이션의 전망은 밝다. K팝, K드라마·영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지는 것은 한국 제품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구 대표 역시 향후 10년 동안 한국 문화 인기가 유지하거나 더 성장하는 만큼, 수출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로열티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그라펜의 메인 제품인 샴푸는 동남아 시장에서 존슨앤존슨, P&G, 콜게이트 등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 중이다. 2023년 7월 기준 세이션은 유명 커머스 쇼핑몰인 쇼피, 라자다, 왓슨스 등에서 ‘베스트 셀링 브랜드’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해외 연평균 성장률은 2019년 대비 무려 54%나 증가했다. 올해 목표 수출액은 300억원이다.

박수호 기자, 이유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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