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색·우승·성공 떠나 출전만으로도 값진 성과… 선수들의 노력 존중받길

박구인 2023. 10. 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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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최윤 항저우亞게임 선수단장
최윤 항저우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장이 지난 4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양궁 컴파운드 혼성전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최 단장은 “내가 스포츠를 통해 받았던 것들을 한국 전체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되갚고 싶다”고 말했다. 항저우=이한형 기자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메달색이나 순위를 떠나 수년간 피와 땀을 흘려 준비한 선수들의 노력과 그 과정을 존중하는 선진 스포츠 문화가 대한민국에 정착되길 바랍니다.”

1140명의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선 최윤(60) 선수단장은 대회 기간 밤낮으로 중국 항저우 일대의 경기장 곳곳을 누볐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가 열릴 때면 태극기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선수들을 찾아가 “정말 멋진 경기 보여줘 감사하다. 고생 많았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항저우아시안게임 폐막을 앞두고 지난 4일 국민일보와 만난 최 단장은 “대회 기간 16일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 아쉽다”며 “포기하지 않고 멋진 경기를 보여준 우리 선수들 덕분에 매일 감사하고 행복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몇 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는 “사실 제가 관심을 받는 게 싫었다. 다만 저를 통해 우리 스포츠나 선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조명받기를 바랐다”며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들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알려져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이번 대회 전부터 ‘비인지 종목’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해왔다. 흔히 쓰이던 ‘비인기’라는 단어 대신 ‘비인지’를 강조한 것이다.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종목일수록 스포츠 경기의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스포츠 선진국에선 모든 국민이 어릴 때부터 1인 1종목을 즐긴다. 생활체육 경험을 통해 선수들이 대회에 나가기까지 노력하는 과정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런 과정들을 알게 되면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인지 종목’을 반복해서 언급한 것은 선수들의 노력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는 단순히 메달이 나온 경기의 결과뿐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인생 스토리, 준비 및 도전 과정 등이 소개되길 기대했다. 비록 당장의 관심은 떨어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목인지도 상세히 알리고 싶었단다.

최 단장은 “선수들의 노력과 인생 스토리, 어떤 종목인지 널리 알려질수록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후배 선수들도 좋아하는 종목을 선택해 꿈을 꾸게 되고, 국가대표에 열심히 도전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스포츠 문화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지 몰라도 스포츠 문화는 아직 후진국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최 단장은 “선수들의 노력은 선진국과 견줄 만하다. 스포츠 문화가 좀 아쉽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경제나 스포츠 모두 단기적으로 급성장했던 경험이 있어서 메달색이나 우승, 성공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선수단 결단식에서 단기를 흔들고 있는 최윤 선수단장. 연합뉴스


이 때문에 엘리트 중심의 선수 육성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언급했다. 최 단장은 “엘리트 선수가 아닌 학교 수업이나 방과 후 생활체육 활동으로 즐기다 정말 좋으면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엘리트 선수들이 운동만 하다 실패했을 때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성공을 할 순 없지만 운동선수 인생이 끝난 이들이 실패한 경험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 이같은 선수 육성 시스템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고 최 단장은 내다봤다. “결국 선진국형 선수 육성 시스템도 스포츠를 했던 사람들의 공감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만 하고 살아왔는데 그게 과연 행복한 일인가. 스포츠 강국들을 이기려면 이제는 체육계뿐 아니라 교육계도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최 단장은 ‘스포츠 산업’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스포츠 산업은 선진국과 비교해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바로 딱 떠오르는 국내 스포츠 용품 브랜드가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했다. 생활체육 인구가 많지 않아 스포츠 산업도 발전하기 힘든 구조라는 설명이었다.

최 단장은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와 생활의 가치를 느낀 사람들 중에 엘리트와 프로 선수, 금메달을 따는 선수도 나온다. 1위는 못했지만 스포츠 정신을 바탕삼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늘어나면 스포츠 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 기간 선수단장의 역할에는 만족했을까. 그는 “사실 선수단장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몰두하도록 환경을 마련해주고 지원하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경기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순 없으니 좋은 식사라도 마음껏 대접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은 잘못 먹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뭘 할 수 있는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 단장은 진심으로 한국 스포츠를 응원했고, 선수단을 살뜰히 살폈다. 대회 기간 항저우에서 추석 연휴를 맞은 선수단 전원에게 선물을 전하고, 아시아 각국 선수들과 교류할 수 있는 교환용 기념배지도 제작했다. 적잖은 금액의 각종 격려금, 메달 보상금 지급 등 금전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최 단장은 “선수나 지도자나 4~5년간 매일 같이 훈련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며 대회에 나왔다. 아시안게임 출전만으로도 값진 성과를 낸 것”이라며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 앞으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길 기대하는 차원에서 격려한 것일뿐”이라고 했다.

재일교포 3세 출신 사업가이자 OK금융그룹 회장인 최 단장은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온갖 차별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동등하게 경쟁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을 배웠다. 그는 스포츠로 인생을 배웠고, 그 고마움을 우리 사회에 되갚고 싶었다. 현재 그는 대한럭비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남자 배구단과 럭비단도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스포츠가 좋아서다. 최 단장은 “선수들의 노력이 주는 감동, 도전 정신 등 스포츠의 가치는 크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스포츠를 통해 받았던 것들을 한국 전체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되갚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 단장은 “우리 선수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스포츠를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가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길 기대한다”며 “죽기 살기로 운동을 한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월드컵 때만 잠깐 빛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어떤 노력과 도전을 하는지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항저우=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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