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쉽지 않은 도시 나폴리, 듣던 대로였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그리스를 떠나 저는 이탈리아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발칸 반도에서 시간을 더 쓸 수 있었다면 알바니아나 보스니아, 크로아티아를 거쳐서 육로로 이탈리아에 갈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일정상 저는 비행기를 택해야 했습니다.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로 향하는 비행편을 예약했습니다. 아테네를 떠나는 날, 공항에 도착해 아무 문제 없이 발권을 마쳤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출발 시간이 계속 지연되더군요. 그러더니 결국 비행편은 취소되었습니다. 나폴리의 날씨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폴리로 가는 항공편은 이틀 뒤에야 자리가 있었습니다. 일단 항공편을 바꾸고, 부쳤던 짐을 다시 찾아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틀이나 일정이 미뤄져 처리할 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문의를 할 때마다 말이 달라지는 고객센터와도 한참 상담을 해야 했죠. 호텔로 향하는 교통비도 따로 청구를 해야 했습니다. 나폴리 쪽 숙소는 결국 취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틀 뒤에도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무사히 나폴리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어렵게 나폴리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어렵게 나폴리에 도착했다. |
ⓒ Widerstand |
곳곳에 보이는 건물은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었습니다. 높은 빌딩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어 건너기 어려운 건널목도 유럽에서는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 공사 중이던 나폴리 중심가 |
ⓒ Widerstand |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1인당 GDP는 대부분 2만 5000유로에서 3만유로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남부 지역에는 1인당 GDP가 2만유로도 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야 주의 1인당 GDP는 1만 8500유로입니다.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야의 1인당 GDP는 3만 8500유로입니다. 남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사이에 두 배가 넘는 경제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북부에서 가장 1인당 GDP가 낮은 움브리아 주도 1인당 GDP가 2만 5000유로입니다.
▲ 누오보 성 |
ⓒ Widerstand |
게다가 북부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밀라노 공국, 피렌체 공화국 등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가 있었습니다. 반면 남부는 주로 나폴리 왕국이나 시칠리아 왕국이라는 단일한 국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전쟁이 발생했을 때도, 이탈리아 남부는 '양시칠리아 왕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전쟁은 북부 토리노를 중심으로 한 사르데냐 왕국이 남쪽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양시칠리아 왕국은 그 마지막 목표물이었죠.
양시칠리아 왕국은 주세페 가리발디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리고 가리발디는 자신이 장악한 남부 지역을 이탈리아 통일 세력에 조건 없이 양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황령을 제외한 이탈리아 통일은 사실상 완수됩니다.
그러니 남부 이탈리아인에게, 이탈리아 통일은 통일이라기보다는 북부의 지배에 가깝게 느껴졌을 수 있겠죠. 물론 이 시기 유럽을 휩쓴 내셔널리즘의 역할도 생각해야겠지만요.
▲ 나폴리 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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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든 봉건제의 해체는 자신의 농토를 가진 자영농 계층의 성장과 함께합니다.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는 자영농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죠. 그렇게 높아진 생산성은 산업화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 자본이 됩니다. 개중에는 공장을 세우고 기업가로 성장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죠. 이것이 서유럽식 산업화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봉건제적 지주-농노제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자영농의 성장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일반 농민들의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는 정치적 변화가 함께 따라오지 못한 탓입니다. 이미 12세기부터 농노의 해방이 시작되고, 자유 도시가 상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던 서유럽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죠.
토지소유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지주는 여전히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농민들은 이름만 농노에서 벗어났을 뿐 경제적으로는 귀족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산업자본의 성장도 뒤쳐져 있었죠. 정치적 주도권도 대지주의 손에 있었습니다.
▲ 누오보 성 |
ⓒ Widerstand |
원래부터 존재했던 언어나 문화의 차이는 이런 지역 격차를 지역 갈등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죠. 남부는 지역 격차 완화를 위한 정책을 주장하고, 북부는 남부에 대한 세금 투입을 반대하는 상황인 것이죠. 지금 이탈리아 의회의 제3당인 동맹당도 원래 이탈리아 북부의 독립을 주장하던 '북부동맹'이라는 정당이었습니다.
▲ 무니치피오 광장 |
ⓒ Widerstand |
복잡한 나폴리의 거리를 바라보며, 제가 앞으로 만날 이탈리아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더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갈수록 더 부유하고, 더 화려한 도시를 만나게 되겠죠. 나폴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이탈리아입니다. 여전히 하나의 국가를 꾸리고 있는 곳입니다. 나폴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의 오늘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겠죠. 어쩌면 이곳이 지금 이탈리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정확한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남에서 북으로 올라갑니다. 달라질 풍경들을 생각하지만, 여전히 갈등과 격차의 현실을 잊지 않으면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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