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쉽지 않은 도시 나폴리, 듣던 대로였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10. 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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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실업률, 북부의 두 배 넘어

[김찬호 기자]

그리스를 떠나 저는 이탈리아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발칸 반도에서 시간을 더 쓸 수 있었다면 알바니아나 보스니아, 크로아티아를 거쳐서 육로로 이탈리아에 갈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일정상 저는 비행기를 택해야 했습니다.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로 향하는 비행편을 예약했습니다. 아테네를 떠나는 날, 공항에 도착해 아무 문제 없이 발권을 마쳤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출발 시간이 계속 지연되더군요. 그러더니 결국 비행편은 취소되었습니다. 나폴리의 날씨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폴리로 가는 항공편은 이틀 뒤에야 자리가 있었습니다. 일단 항공편을 바꾸고, 부쳤던 짐을 다시 찾아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틀이나 일정이 미뤄져 처리할 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문의를 할 때마다 말이 달라지는 고객센터와도 한참 상담을 해야 했죠. 호텔로 향하는 교통비도 따로 청구를 해야 했습니다. 나폴리 쪽 숙소는 결국 취소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틀 뒤에도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무사히 나폴리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어렵게 나폴리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나폴리에 도착했다.
ⓒ Widerstand
  그렇게 도착한 도시여서일까요. 나폴리는 들었던 대로 여행하기 쉬운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시내버스 티켓을 구매하는 것부터 헤맸습니다. 알고 보니 정류장 주변의 작은 가게에서 일종의 회수권을 구매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곳곳에 보이는 건물은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었습니다. 높은 빌딩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어 건너기 어려운 건널목도 유럽에서는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격차라는 게 이런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이탈리아의 모습과 눈 앞의 나폴리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공사 중이던 나폴리 중심가
ⓒ Widerstand
 실제로 이탈리아의 남북 격차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큰 상황입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이지만, 남부 지역은 유럽에서는 가난한 편에 속합니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1인당 GDP는 대부분 2만 5000유로에서 3만유로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남부 지역에는 1인당 GDP가 2만유로도 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야 주의 1인당 GDP는 1만 8500유로입니다.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야의 1인당 GDP는 3만 8500유로입니다. 남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사이에 두 배가 넘는 경제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북부에서 가장 1인당 GDP가 낮은 움브리아 주도 1인당 GDP가 2만 5000유로입니다.

전체 GDP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부의 GDP를 다 합쳐도 중북부 GDP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죠. 남부의 실업률도 북부의 두 배를 예사로 뛰어넘습니다.
 
 누오보 성
ⓒ Widerstand
 물론 남북부의 격차에도 역사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이탈리아는 19세기까지 여러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북부와 남부가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아 다른 역사를 걷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죠.

게다가 북부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밀라노 공국, 피렌체 공화국 등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가 있었습니다. 반면 남부는 주로 나폴리 왕국이나 시칠리아 왕국이라는 단일한 국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전쟁이 발생했을 때도, 이탈리아 남부는 '양시칠리아 왕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전쟁은 북부 토리노를 중심으로 한 사르데냐 왕국이 남쪽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양시칠리아 왕국은 그 마지막 목표물이었죠.

양시칠리아 왕국은 주세페 가리발디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리고 가리발디는 자신이 장악한 남부 지역을 이탈리아 통일 세력에 조건 없이 양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황령을 제외한 이탈리아 통일은 사실상 완수됩니다.

그러니 남부 이탈리아인에게, 이탈리아 통일은 통일이라기보다는 북부의 지배에 가깝게 느껴졌을 수 있겠죠. 물론 이 시기 유럽을 휩쓴 내셔널리즘의 역할도 생각해야겠지만요.

특히 문제가 된 것은 통일 뒤의 경제적 문제였습니다. 통일된 이탈리아 왕국은 빠른 산업화와 공업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주로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죠.
 
 나폴리 항
ⓒ Widerstand
 농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던 남부에게 공업화는 먼 이야기였습니다. 대지주는 여전히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죠. 통일 이후 이탈리아 정부의 여러 조치를 통해 남부의 봉건제가 해체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산업자본의 발달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어떤 형태든 봉건제의 해체는 자신의 농토를 가진 자영농 계층의 성장과 함께합니다.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는 자영농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죠. 그렇게 높아진 생산성은 산업화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 자본이 됩니다. 개중에는 공장을 세우고 기업가로 성장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죠. 이것이 서유럽식 산업화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봉건제적 지주-농노제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자영농의 성장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일반 농민들의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는 정치적 변화가 함께 따라오지 못한 탓입니다. 이미 12세기부터 농노의 해방이 시작되고, 자유 도시가 상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던 서유럽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죠.

토지소유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지주는 여전히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농민들은 이름만 농노에서 벗어났을 뿐 경제적으로는 귀족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산업자본의 성장도 뒤쳐져 있었죠. 정치적 주도권도 대지주의 손에 있었습니다.

북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제 정책도 남부의 몰락에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 각지에 농산물을 수출하던 남부에게, 이탈리아 정부가 매긴 높은 관세는 큰 부담이 되었죠. 공업화에 집중하며 농업 발전을 위한 정책이 등한시되기도 했고요.
 
 누오보 성
ⓒ Widerstand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격차는 해소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남부와 북부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완벽한 해결은 요원했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주로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출신인 것도, 이런 경제적인 이유가 배경에 있습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언어나 문화의 차이는 이런 지역 격차를 지역 갈등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죠. 남부는 지역 격차 완화를 위한 정책을 주장하고, 북부는 남부에 대한 세금 투입을 반대하는 상황인 것이죠. 지금 이탈리아 의회의 제3당인 동맹당도 원래 이탈리아 북부의 독립을 주장하던 '북부동맹'이라는 정당이었습니다.

 
 무니치피오 광장
ⓒ Widerstand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 타야 했던 비행기가 취소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리 공항은 척 보기에도 도시 규모에 비해 작고 낡아 보였거든요. 활주로도 하나 뿐이었고, 시내와 가까워 밤 시간대에는 비행기가 오가기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한참이나 지연되던 비행기가 결국 뜰 수 없었던 것도, 이런 노후화된 시설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죠.

복잡한 나폴리의 거리를 바라보며, 제가 앞으로 만날 이탈리아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더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갈수록 더 부유하고, 더 화려한 도시를 만나게 되겠죠. 나폴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이탈리아입니다. 여전히 하나의 국가를 꾸리고 있는 곳입니다. 나폴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의 오늘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겠죠. 어쩌면 이곳이 지금 이탈리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정확한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남에서 북으로 올라갑니다. 달라질 풍경들을 생각하지만, 여전히 갈등과 격차의 현실을 잊지 않으면서, 갈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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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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