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이들의 인생, 단역 출연도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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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6일은 우리 학교 3학년 체육대회가 열리는 금요일. 다행이다. 하늘은 푸르고 기온이 선선하여 강아지 같은 우리 학생들이 뛰어놀기 안성맞춤이다.
이미 9월부터 치러진 축구와 피구 예선전 경기로 체육대회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다른 반의 경기를 보느라 여념이 없고,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블라인드를 내려야 하는 교사와 실랑이까지 벌일 만큼 예선전 경기에 신경을 쏟았다.
학교 규모가 크다 보니 학년별로 체육대회가 따로 치러지는데, 1학년 체육대회가 시작한 수요일부터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교실이 아닌 푸르른 운동장에 두둥실 떠다녔다.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야말로 담임을 맡은 교사가 가장 부러운 날이다. 대놓고 우리 반을 편애하고 목소리가 쉬도록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응원할 수가 있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으면서 밀도 높은 정신적인 스킨십을 할 수 있다.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담임을 맡지 못하고 있어(이 부분은 항상 담임을 맡은 동료 교사에게 미안하다.), 수업 들어가는 3학년 네 반 모두를 응원하기로 하고, 파파라치처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같은 반의 축구 경기를 앉지도 못하고 내내 서서 응원하는 아이들. |
ⓒ 김소영 |
첫 경기는 줄다리기. 어느 반은 엇박자로 구호를 붙여 가며 줄을 당기고, 어느 반은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자세로 줄을 당긴다. 내 나름의 줄다리기 우승 전략을 수업 들어가는 반에 코치해 줬다. 허나, 체격이 너무 차이가 나는 반이랑 붙으니 이런 전략 따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8반의 괴력을 맛본 나머지 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고, 8반 아이들은 승리의 함성을 푸른 하늘로 쏘아 올렸다.
두 번째 경기는 태풍의 눈. 반 구성원 모두가 참가해 5명씩 긴 원통형의 막대를 계주의 바통처럼 지니고 달려야 한다. 달리다가 고깔이 나올 때마다 한 바퀴 돌고, 세 고깔을 모두 돌고나서 처음의 위치로 다시 돌아오면 다음 조가 이어서 달리는 경기이다. 고깔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중심축을 잘 잡아야 하고 고깔에서 가장 멀리 있는 학생은 최대한 바짝 붙어서 잽싸게 돌아야 한다.
범범이, 시유, 찬드래곤, 인상이는 태풍의 눈 중심에서 버티느라 이를 악 물었다. 섭섭이, 자영, 채운, 남억이는 가장 바깥에서 도느라 젖 먹던 힘을 다한다. 가르치는 반이 경기할 때마다 옆에 가서 고깔을 돌 때는 "천천히! 침착하게!" 하며 들리든 말든 나 혼자 소리 지르고 다 돌고 돌아올 땐 "자 이젠 달려야 해! 빨리빨리!" 하며 함께 달렸다.
세 번째 경기는 남학생에게 가장 인기 많은 축구 경기. 전반전은 여학생이 후반전은 남학생이 경기에 나선다. 아무래도 여학생은 축구를 평소에 하지 않다 보니, 공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서툴지만 귀엽다. 그 서툴고 귀여운 여학생 속에서 자현이는 군계일학이다. 경기가 끝난 후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 엄지 척을 하며 너무 잘하더라고 칭찬하니 초등학교 때 인라인스케이트를 탔었다며 수줍게 웃는다.
남학생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필드 바로 앞에 서서 여학생을 응원한다. 전반전이 끝나고 남학생이 출격하는 후반전이 시작되자 눈에 띄게 경기 속도가 빨라졌다. 평소에도 H 리그(우리 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열리는 축구 리그전)에 열심인, 축구에 진심인 남학생이다 보니 플레이하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
(관련기사: 강릉 중학교 운동장에서 이 장면 볼 때마다 웁니다 https://omn.kr/24iqw)
여학생 세윤이는 축구 선수라 남학생들이 하는 후반전에서 뛰었는데, 평소엔 사슴처럼 여리여리하더니 그라운드에선 날렵한 표범 같다. 어찌나 날쌔고 멋진지 같은 반 여학생들도 세윤이가 멋지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다가 중반 이후로 1반 경팔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경기가 끝났다.
오후의 일정은 베아트리스와 스틸의 축하 무대로 시작된다. 베아트리스와 스틸은 댄스 동아리로(베아트리스는 치어리더) 이들은 점심시간마다 학교 한편에 마련된 댄스 플레이스에서 춤을 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차분한 모습만 보여주던 규빈이, 설윤, 연이, 단영이는 무대에 서니 스우파의 그녀들처럼 카리스마 작렬하는 멋진 언니가 된다.
포니테일 한 민선이가 음악에 맞춰 360도 머리를 흔드는 안무를 할 때는 흥이 넘치는 나도 따라 하고 싶어 움찔거리지만 애써 참으며, 발로 까딱까딱 리듬을 탄다. 베아트리스와 스틸은 12월 말에 열리는 우리 학교 축제 때 피날레 장식을 누가 할지에 대하여 은근한 기싸움을 한다는데, 누가 됐든 우리는 그녀들의 무대에 넋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오후의 첫 경기는 단체 줄넘기. 두 명이 긴 줄을 돌리고 반 아이들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줄을 넘어 통과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줄을 많이 넘은 반이 이긴다. 4반 상업이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하며 줄을 뛰어넘는 묘기를 보여주고, 친구들이 뛸 때마다 줄 밖에서 자신도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 점프를 하며 "좋아! 좋아!" 하며 응원한다.
78회라는 저조한 성적이 발표되었는데도, 4반 아이들은 박수를 쳐가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이거 무슨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아이들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피구왕 은춘이의 활약도 봐야 하고, 잠꾸러기 한준이가 나가는 장애물 이어달리기도 응원해야 하는데 두시부터 잡혀 있는 출장이 너무나 야속하다.
오늘의 일정을 다 마무리한 후 잠들기 전에 네 반의 담임 선생님에게 찍은 사진을 전송하고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인사를 전했다. 대회 결과가 궁금했지만, 다음 주 학교에 가 아이들에게 직접 듣고, 오늘 본 모든 것들을 다 칭찬해 줘야지. 그렇게 많은 학생이 질서정연하게 응원하는 모습, 패배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는 모습, 목이 쉬어라 같은 반 친구를 응원하는 모습,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리는 모습 등 정말 너희들은 존재 자체가 아름답고 눈부시고 감동적이라고. 그런 눈부신 너희들의 삶에 잠시나마 단역으로라도 출연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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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나저나 올해 부임한 우리 학교는 H 리그를 진행하느라 체육 선생님이 일 년 동안 애쓰시는데, 체육대회의 모든 경기 심판도 체육 선생님이 다 하신다. 정말 삼일 내내 팔이 새카맣게 타도록 고생하신 체육 선생님들에게 박수를, 아이들 옆에서 하루 종일 애쓰신 담임 선생님께도 물개박수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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