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맞이 '이 책' 추천합니다

우연주 2023. 10. 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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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책과 노니는 집> , 천주교 박해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우연주 기자]

1443년에 완성된 후,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된 한글.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 소설과 천주교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책과 노니는 집>을 읽었다. 이 이야기는 영·정조시대 한 필사쟁이 부자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동화로 역사적 사실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학적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훌륭하다.

 이 동화에서 핵심 키워드 세 개를 꼽아보자면, '천주학', '필사', '한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신해박해(1791년, 정조 15년)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전라도 선비 윤지충이 모친상 제사를 거부하고 천주교식으로 치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동화에서도 천주학 책을 몰래 들여와 필사하고 알음알음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는데, 주인공 장이의 아버지는 천주학쟁이가 아님에도 책방 서쾌(책을 파는 사람)의 부탁으로 천주학 책을 필사한 것이 들통나 매질을 맞다 장독이 올라 결국 죽고 만다. 장이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천주학의 사상을 전해 들었다.   
       
"양반이건 상놈이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백정, 망나니건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귀하고 평등하다는구나."
 아버지는 천주학 얘기를 들려주었다. 천주학을 믿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했다.
"천주학 책을 옮겨 적으며 아비는 손이 떨리고 마음에 비바람이 일었다. 우리 같은 것들은 날 때부터 천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구나. 조선에는 천지개벽할 소리지만 서양에서는 모두 그렇게 믿는다더라.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장이는 광통교 밑의 땅꾼들, 상여꾼들, 망나니들이 자신과 똑같이 귀하고 평등하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장이보다 더 천한 사람이었다. 장이처럼 글을 아는 자도 없었고, 집도 없고 더럽고 가난했다. /본문 90쪽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국가로 처음에는 천주교를 서양 학문의 하나로 보고 서학이라 하여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주교의 사상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를 내세우고 있어 피지배계층으로부터 널리 받아들여지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앞서 언급한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네 번의 대규모 박해가 거행된다. 이런 슬픈 역사적 사건이 배경이 된 이야기가 바로 동화 <책과 노니는 집>이다.
 이 이야기는 천주교 박해와 더불어 또 하나, 한글 소설이 널리 퍼진 시대적 배경도 담고 있다. 한글 소설이 널리 퍼지면서 책을 베껴서 옮기는 필사쟁이와 전기수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전기수는 한글 소설을 배우처럼 실감 나게 읽어주는 이야기꾼을 말한다. 한글 소설을 언문 소설이라 하며 한글을 낮추기도 했지만, 한글 소설 덕택에 신분 차별이 공고했던 조선 시대에 '평등'의 씨앗이 자라게 되었다.     
"양반들이 한자 타령하는 거야 다 그럴 만하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 일 안 하고, 해 주는 밥 먹으며 글만 파니 어려운 한자를 익힐 수 있지. 나이 스물, 서른이 넘도록 과거 준비한답시고 글방에 앉아 세월을 죽일 수 있는 팔자도 양반뿐이고."
..
"내가 취했구나. 헛소리를 지껄이고. 하여튼 온을 밤 도리원의 조촐한 이야기 연회가 좋더구나. 양반, 기생, 장사꾼, 부엌데기……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재미난 소설을 들으니. 『논어』나 『맹자』를 읽을 땐 번번이 졸았는데 언문으로 된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트이고 가슴이 뚫리지 뭐냐." 본문 156쪽      
 이 동화에는 주인공 장이와 처음에는 티격내격하다가 점차 서로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는 낙심이라는 기생집 아이도 나온다. 낙심이라는 이름은 아들을 기대했다가 딸이 태어나자 실망한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으로 낙심이는 남동상 백일상을 차려주고자 늙어빠진 노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돈에 기생집에 팔려왔다. 둘 다 가여운 처지인 고아인 장이와 팔려온 낙심이의 애정도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한다.     
책방 심부름꾼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필사쟁이가 된 장이는 자신에게 처음 필사 일을 맡긴 홍 교리로부터 이 동화의 제목 <책과 노니는 집>이 쓰인 현판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꿈이었던 책방을 만들 것으로 암시하며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잠시 뒤 장이는 사랑채 마당에서 '서유당(書遊堂)'이라는 현판을 보며 중얼거렸다.
"책과 노니는 집……."
장이는 죽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꿈은 작은 책방을 꾸리는 것이었다. 아침이면 아버지는 밤새 글씨를 써서 벌게진 눈으로 장이를 향해 웃어 주었다. 그러면 장이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앉은뱅이책상 곁에 다가가 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웠다.
"간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쓰셨어요?"
아버지는 손에서 붓을 떼지 않은 채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줄 이야기를 썼지." /본문 76쪽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 본문 78쪽  

비록 천주교 박해라는 슬픈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박친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속에 '책'을 소재로 부자의 꿈이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천하다고 멸시받고 무시당하는 존재였지만, 장이와 장이 아버지는 꾸준한 성실함과 신의로 결국 자신들의 꿈에 다가갔다. '서유당', 즉 '책과 노니는 집'은 장이와 장이 아버지만의 꿈이 아니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모든 설움과 억울함을 지닌 존재들, 그들에게는 희망이었다. 그 배경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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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https://brunch.co.kr/@lizzie0220/595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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