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배후 이란?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판 짠 美, 스텝 꼬여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한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수교 빅딜’을 모색하는 가운데, 이들의 최대 적수인 이란이 판을 흔드는 모양새다. 바이든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수교 협상은 교착이 불가피해졌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날 하마스의 대대적인 미사일 공격 직후 야히아 라힘 사파비 이란혁명수비대 전 사령관은 국영 매체를 통해 “하마스의 이번 작전은 칭찬할 만한 일이며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파비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최측근이다. 앞서 하메네이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 나흘 전인 지난 3일 X(옛 트위터)에 “시오니스트(이스라엘) 정권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경고를 올렸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 역시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 전사들과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며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시인했다.
8일엔 하마스에 이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기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쪽 국경 지대에 다수의 로켓과 박격포탄을 발사했다. 헤즈볼라는 공격 직후 “하마스의 대규모 공중, 해상, 지상 공격에 연대한다”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영토 안팎에서 친이란 성향의 무장 세력들이 전방위 포위 공격에 나선 셈이다.
이 같은 동시다발 공격에 이스라엘과 서방은 이란 개입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7일 긴급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어떤 세력도 이 같은 공격을 이용할 때가 아니다’고 한 발언은 이란을 향한 경고”라고 전했다.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도 익명을 전제로 “이란의 지원 없이 하마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신문에 말했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조너선 샨저 수석연구원도 폴리티코에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방식으로, 조악한 자살폭탄 테러에 의존해온 전통적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며 “이란의 후원 없이는 단행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서부 해안의 가자지구를 기반으로 한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통치권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대표로 인정한다.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협상과 관련해 지난달 사우디가 30년 만에 서안지구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입지가 줄어든 하마스가 이란을 등에 업고 전면 도발을 감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싱크탱크 아랍·걸프 국가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쉬 수석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하마스는 말 그대로 방에 폭탄을 던지고 있다”며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자극해 사우디까지 협상에 응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동 정책은 더욱 꼬이게 됐다. 앞서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전제로 ‘안보조약 + 민간 핵 개발 허용’을 패키지로 미국 측에 요구하며 셈법이 복잡해진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 양측 모두에게 민감한 팔레스타인 문제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협상이 물 건너가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게 진짜 빅딜”이라며 공들여온 IMEC 구상은 사우디·이스라엘 구간의 철도 부설을 핵심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번 일이 터지기 일주일 전만 해도 백악관의 브렛 맥거크 중동·북아프리카조정관과 아모스 호흐슈타인 에너지안보 보좌관이 비밀리에 사우디를 방문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매일 가까워지고 있다”며 힘을 보탰다.
이와 관련 사우디의 한 정부 관계자는 WSJ에 “현재 전망은 우리에게 매우 나쁘다”며 “당분간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둔 사우디가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앞서 사우디 외교부는 7일 공식 입장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 박탈이 우려된다”고만 했을 뿐, 하마스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진 않았다.
수십 년 만에 전면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 역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 강경파들이 향후 사우디와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양보를 거부할 공산이 크다.
NYT는 “하마스 사태는 바이든 정부가 야심 찬 외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가운데, 중동의 수십 년 묵은 갈등이 여전히 암적 요소로 남아 있다는 점을 통렬히 일깨웠다”고 지적했다.
단 수교 협상이 완전히 틀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국왕과 달리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의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다는 해석이다. '미 국가안보를 위한 유대인 연구소'의 존 해나 연구위원은 NYT에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외교 노력에 차질이 생길 순 있지만, 빈살만이 사우디 국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믿는 이번 협상을 완전히 깨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사태가 내년 미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양측 수감자를 맞교환하는 대가로 동결자금을 해제한 것을 두고 맹공을 퍼부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일 "이란과의 합의가 이번 공격의 촉매제가 됐다"며 "이번 전쟁은 두 가지 이유로 발생했다. 미국이 인질들에 대해 이란에 60억 달러(약 8조원)를 주고 있고, 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경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이란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이번 전쟁에 자금을 대는 것을 지원해왔다"며 "이란을 관대하게 다룬 조 바이든의 정책들이 그들의 금고를 채우는 것을 도왔고, 이제 이스라엘이 이러한 정책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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