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이틀 줄게"…여의도 100만명 지킨 '주황 조끼' 1200명 정체
지난 7일 오후 3시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잔디밭이 돗자리로 뒤덮였다. 저마다 음식과 음료를 챙겨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고, 잔디밭을 둘러싼 길과 주차장 등도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이날 저녁 예정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러 온 나들이객들이 ‘명당’을 찾아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탓이었다. 원효대교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최보미(25)씨는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축제까진 8시간 이상 남았는데 맨 앞줄은 이미 사람들이 차 있었다. 오후 1시엔 주변 잔디밭 전체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
이날 축제를 보기 위해 100만명 이상이 여의도 일대에 모였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거나 이동 흐름이 정체되는 등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몇 차례 연출됐지만, 그때마다 경찰과 행사를 주최하는 한화 임직원 봉사단이 나타나 사람들 사이에 틈을 만들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안내했다.
낮 동안 비교적 한산했던 공원 입구 등까지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한 오후 6시쯤부터는 경찰이 수변으로 내려가는 행렬을 통제하기도 했다. 주황색 조끼와 야광봉을 든 한화 봉사단 역시 경찰과 함께 사람들을 공원 바깥으로 안내했다. 몇몇 시민들은 “일행이 있다”거나 “자리가 바로 앞”이라며 안내선을 뚫고 지나가려 했지만, 봉사단은 “안전을 위해서는 일일이 사정을 듣고 출입을 시킬 수가 없다”며 양해를 구한 뒤 엄격하게 현장 인파를 통제했다.
오후 7시 30분쯤 공연 시작과 함께 중국 참가팀의 불꽃이 하늘에 등장하자 사람들이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우르르 앞으로 몰리며 다시 혼란이 발생했고, 잘 정리됐던 통행로도 순식간에 사람들로 막혔다. “멈추지 말라”고 소리치며 길을 통제하던 경찰과 봉사단은 인파가 몰리자 직접 몸으로 길을 트며 “뒤로 물러나 달라”고 연신 소리쳤다. 사다리 위에선 이동 방향을 안내하는 운영본부 관계자의 함성이 쉼없이 흘러나왔고, 다행히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행사 종료 후에도 한꺼번에 대규모 인파가 빠져나가며 곳곳에서 정체가 벌어졌지만, 또다시 경찰과 봉사단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틈을 비집고 인파 속에 들어가 야광봉을 연신 흔들며 길을 안내했고, 덕분에 잠시 멈췄던 이동 흐름이 다시 이어졌다. 이날 행사 주최 측은 1200명의 봉사단을 현장에 배치했는데,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바로 시민들이 멈추지 않고 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한화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때 봤듯이 사람들의 흐름이 정체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쉬워 그 부분을 가장 신경 썼다”며 “한 달 전부터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계열사별 봉사단장 50여명과 단원들을 교육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선 봉사단을 모집하기 위해 대체휴가 2일 부여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불꽃축제 관람 티켓도 제공했다. 한화 관계자는 “희망 인원이 많아 오히려 참가자를 제한해야 했다”고 말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번 불꽃축제 중 긴급구조가 95건 이뤄졌지만, 큰 인명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봉사단원들의 활약은 공연 종료 후에도 이어졌다. 오후 9시부터 공원 청소 등 미화 업무에 투입됐다. 2인 1조로 공원을 구석구석 훑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수거했다. 입사 5년차인 이종훈(30)씨는 “봉사단 참여는 처음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벤트라 이야깃거리도 생기고 구경도 할 수 있어 지원했다. 밤 늦게까지 청소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끝나니 뿌듯했다. 기회가 있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튿날 ‘원상복구’된 여의도… “오히려 평소보다 깔끔”
8일 오전 7시 다시 찾은 여의도 한강공원은 12시간만에 행사 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된 덕이었다. 집하장은 쓰레기봉투로 산을 이룰 정도였지만, 공원 내부는 말끔했다. 오전 6시부터 나와 미화 업무를 하고 있던 한강사업본부 여의도센터의 한 직원은 “주최 측이 있는 행사라 정리 상태가 오히려 평소보다 낫다. 센터에서도 평소보다 두 배 많은 인원이 출근했지만, 주최 측이 책임지고 별도로 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정리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원모(34)씨는 “주말마다 한강변을 뛰러 나올 때 쓰레기가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오늘은 깨끗한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공원 정리를 위해 대부분 힘을 보탰다. 가져온 쓰레기를 가져가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다만 일부 이용객들은 주변의 눈총에도 아랑곳 없이 사용한 돗자리와 음식물 쓰레기를 그대로 둔 채 떠나기도 했다. 또 전날 사람들이 주차장 사이사이까지 자리를 펴고 앉았던 만큼, 주차장엔 음식물 흘린 자국 등이 일부 남아있기도 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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