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음미하는 한국어…시인 문정희가 반년 넘게 고민한 문구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교엔 '말하는 돌의 정원'이 있다. 돌 위에 새겨진 문구는 지난한 여정을 밟아온 산티아고 여행자에 잠시 쉬어가라 권한다.
2018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이 정원엔 갈리시아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가 새겨진 돌이 놓여 있는데, 올해 3월 17일 한국어 문구를 새긴 돌이 세워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자 현재 한국문학관장으로 있는 문정희(76)가 지은 문구다.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 나뿐인가 / 하늘 아래 가득한 질문 하나 (문정희)
문 관장이 콤포스텔라 시의회 측으로부터 제안 메일을 받은 것은 2021년 5월. “한 번도 활자화되지 않은, 무심코 지나가다 읽어도 가슴에 와 닿을 법한 문구”를 한국어로 적어달라는 내용의 의뢰였다. 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문 관장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알릴 기회라 생각해 (제안이) 영광스러웠다”면서 “여러 나라의 언어 사이에서 한국 시인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문구를 고민했다”고 했다. “세 줄짜리 문구를 작성해 회신하기까지 반년이 넘게 걸렸다”고 덧붙였다.
숙고 끝에 작성한 문구는 석공의 손길을 거쳐 한국어로 새겨졌다. 이후 199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영어), 국왕이 내리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받은 시인 안토니오 가모네다(스페인어) 등 세계 최고 시인들이 지은 문구가 새겨진 석비와 나란히 놓였다.
문 관장은 “산티아고 길을 찾는 전 세계 여행자 중 한국인이 숫자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더라”면서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주로 ‘내가 누구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지?’하는 질문을 갖게 되는데, 이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문구이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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