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공개 후 힘들어진 글쓰기, 이유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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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글쓰기가 생경해졌다. 공개적인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매일 쓰는 것도 가능했다. 요즘은 글을 통 못 쓰고 있다. 매체에 송고하는 기준으로 월 1~2개의 글을 쓰기도 버겁다. 고민과 퇴고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글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처음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 일쑤다.
▲ 좋아했던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
ⓒ 픽사베이 |
아이들을 재운 뒤에야 내 시간이 주어진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정도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글쓰기에 올인한다고 하더라도 1주에 하나의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중간에 다른 일이 생기거나 컨디션이 안 좋기라도 하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처음에는 언제 어디서든 끼적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글의 내용이나 글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쓰는 행위 자체에 행복을 느꼈다.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할 필요가 없고, 원하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퍽 매력적이었다.
매체에 송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삶의 모습을 글로 써내는 것은 동일하지만, 가벼운 느낌의 글이 아닌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주제를 선정하고 초고를 쓰기까지 최소 며칠은 걸렸다. 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는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글을 통째로 버릴 때도 있었다.
좋은 점도 있다. 쓰는 부담은 더해졌지만 글쓰기를 좀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이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써 내려간 글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때면 노력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글을 쓴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잘 읽고 있어요.'라는 인사를 건넬 때면 긴장이 되면서도 묘한 쾌감이 일었다.
글마다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쓴 글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되었다. 어떤 글은 운이 좋게도 포털 사이트 메인에 등록되어 수만 명이 읽기도 했다. 꾸준히 글을 송고하면서 예전보다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 느낀 짜릿함은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자꾸만 '더 좋은 것'을 향한 욕심이 생겨났다. 나만의 템포로 원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더 많은 반응과 칭찬을 얻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거나 되려 비난을 받을 때는 착잡함을 느껴야 했다.
몇 번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즐거웠던 글쓰기는 점차 부담으로 변해갔다. 더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조급함은 글쓰기에 적합한 내적 평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글쓰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컨디션이 좋아도 부족할 판에 이런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읽기는 그렇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불확실한 글쓰기보다는 행복이 보증되는 책 읽기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문득 잘 써지지도 않는 글은 그만 쓰고,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독서를 통해 '나도 좋은 문장을 쓰고싶다'는 자극을 받는다. |
ⓒ 픽사베이 |
이번 추석에 3권의 책을 읽었다. 양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집으로 놀러 온 3명의 조카와 놀아주면서 나름 바쁜 연휴를 보냈지만, 틈틈이 읽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연휴를 대비해 도서관에서 미리 책을 빌려둔 게 다행이었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책을 읽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책을 읽으며 그저 즐거움을 얻는 것에 만족했다면, 요즘은 작가 고유의 문체나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에도 관심이 간다. 최근 소설가 김애란의 책을 몇 권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고 더없이 정갈한 느낌이었다. 과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문장들로 채워진 이야기들은 그 어떤 글보다 눈에 잘 들어왔다.
좋은 문장을 읽으니 없던 집중력도 생기는 것 같았다. 내용 자체도 흥미로운데 흡입력까지 더해지니 재미를 넘어 감격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어쭙잖은 글쓰기보다 검증되고 우수한 글을 읽는 것은 확실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몇 권의 책을 읽는 도중 예상하지 못한 마음이 불쑥 생겨났다.
'나도 이런 문장을 써보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과 냉소는 쓰기가 아닌 읽기로 나를 이끌었는데, 책을 읽으며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 썼을까. 그들 또한 글을 쓰는 내내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자신의 글에 깊은 염증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퇴고에 퇴고를 반복하는데, 이제 고작 글쓰기에 첫 발을 내딛는 단계에서 내가 너무 성급하게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잘 쓰인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뭔가 좋은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문장이 좋고 내용이 간결한 글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추석 내내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풍선처럼 자꾸만 불어났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일 테니까.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내면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집중력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비용도 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치열하고 오랜 고민의 흔적들을 아무런 방해 없이 느긋하게 읽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읽는 것과는 다르다. 글쓰기는 빈 종이를 '나'라는 소재로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이미 완성된 결과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나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은 힘이 들고 외로우며,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글쓰기는 바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유익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 무엇이 나를 기쁘고 슬프게 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지속적으로 묻고 답하는 과정은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느리지만 확실한 길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수익도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어쩌면 내 삶에 가장 필요한 순간들이 아닐까.
좋은 책을 읽는 것에서 좋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의 이성은 바쁘고 힘들다는 합리적인 근거로 나로 하여금 글쓰기를 피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글을 써내고자 끼적이는 삶은 분명 힘들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공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 삶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그 순간만큼은 아빠, 직장인, 가장으로 뭉뚱그려지는 내가 아닌 지구상에 유일한 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꾸준히 쓴다는 것은 나를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 아닐까. 글쓰기가 여전히 힘들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아직은 쓰는 삶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연휴 간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 본다. 오늘은 또 어떤 글을 써볼까. 다시 나 자신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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