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과태료 1조원 시대…“민식이법으로 단속장비 급증한 탓”

김민중 2023. 10. 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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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 과속단속 CCTV가 설치되고 있다. 이 곳에서는 2020년 한 해 동안 세 남매 가족이 화물차에 치이는 등 2건의 인명피해 교통사고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회사원 안모(37)씨는 지난 6월 출근길 속도위반 단속에 걸렸다. 전에 없던 교통단속 카메라가 설치되고선 긴장을 풀고 있던 안씨의 차량을 잡아낸 것이다.

2010년쯤부터 운전을 시작했다는 안씨는 5일 중앙일보에 “2010년대 말까지 교통법규 위반(속도위반·신호위반 등) 단속에 한두 번 걸렸는데, 2020년대 들어선 최근까지 6번 걸렸다”며 “운전 경력이 길어질수록 실력도 쌓여 단속에 덜 걸릴 법한데 여기저기 단속 카메라가 천지로 생기니 조금만 잘못을 해도 바로 걸리는 거 같다”고 말했다.


교통단속 카메라 2020년 1만대→지난해 2만대


지난해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액이 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연간 교통단속 카메라를 통해 교통법규 위반 차량에 부과한 과태료 액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6000억원 안팎 수준을 기록하다 2021년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8년(6577억원)부터 2020년(6803억원)까지는 6000억원 대에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2021년 8027억원이 된 데 이어 지난해 1조716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8월까지 7240억원을 부과해 다시 한 번 기록 경신이 예상된다. 부과 건수 역시 2020년 1397만건에서 2021년 1581만건, 지난해 2028만 건으로 가파른 상승세다.

경찰청은 “2020년 3월 이후 단속 카메라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3월 이른바 ‘민식이법’이 시행되면서 교통단속 카메라 수가 급증했다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2019년 9월 충남 아산시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김민식(당시 9세)군이 사망한 뒤 만들어진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상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2건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전국의 교통단속 카메라 수는 2020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2018년 7979였던 단속 카메라는 2019년 8982대, 2020년 1만164대였다. 하지만 2021년에 1만 4315대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2만 262대까지 늘어났다.

2023년 9월 28일 영동고속도로 경기 용인시 구간에서 경기남부경찰청 항공대 소속 헬기가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의 공익신고(한국도로공사의 드론 단속을 통한 공익신고 포함)에 따른 교통법규 위반 단속 건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익신고에 따른 과태료 부과 건수는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2018년 104만 건이었던 공익신고에 따른 과태료 부과 건수는 2019년 133만 건, 2020년 212만 건, 2021년 290만 건, 지난해 315만 건을 기록했다. 공익신고 증가의 배경을 두고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김민식군 사망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안전한 사회를 염원하는 국민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과태료를 많이 걷다 보니, 과태료가 잘못 걷히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교통단속 장비 오류로 잘못 부과된 과태료는 252건(2435만원)으로 집계됐다. 대형택시를 모는 운전기사 서모씨는 3월 “제한속도가 시속 80㎞인 전남 해남군 도로에서 시속 142㎞로 달렸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서씨의 차량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는 시속 110㎞였다. 알고 보니 단속 장비에 오류가 발생한 탓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미 과태료를 납부한 운전자가 중복해서 다시 과태료를 납부하는 과오납 건수도 5123건(2억 6173만원)을 기록했다.

2023년 3월 30일 경기 수원시 한 도로에 후면 번호판 단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아이 생명 살리는 길” vs “빅브라더 감시체제 우려”


교통 과태료 급증세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김종화 전국모범운전자회 회장은 “운전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아이들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에 “불경기 속에서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자칫하면 촘촘해지는 교통법규 단속 시스템이 ‘빅브라더’식 국민 감시체제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려도 존재한다.

경찰에선 단속장비를 줄일지 등을 검토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교통질서를 확립하면서도 지나친 국민감시라는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정 단속장비 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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